성공회 람베스 통신

News & Musings from the Lambeth Conference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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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저 보고서 계속 논의 - 공청회

July 28th, 2008 · 5 Comments · 공청회, 동정, 성공회 계약, 이슈

마지막 주에는 세계 성공회 안에서 논란의 되는 주제들이 집중적으로 밀집되어 있다. 이른바 “공청회”(Hearing Conference)와, 또다른 개인 선택 세션에서 논의가 되는 핵심 주제는 “윈저 보고서 계속 그룹의 보고”와 이에 대한 자유 발언, 그리고 “성공회 계약 논의 계속 그룹의 보고”와 이에 대한 자유 발언과 “계약” 문서 자체에 대한 논의들이다.

28일 오후 1시간 30분에 걸쳐 열린 “윈저 보고서 계속 그룹의 보고” 공청회 - “윈저 보고서 계속 그룹의 보고”의 내용은 람베스 회의 공식 웹사이트에 올라와 있다 - 는 뜨거운 바깥 열기만큼이나 뜨겁고 더운 이야기들도 후끈 달아 올랐다. 냉방 시설이 없는 곳에 주교들과 관계자들 700여명이 참석했으며, “계속 그룹”의 보고를 들은 뒤, 자유 발언으로 이어졌다.

lc_windsor_hearing2.jpg

(ACNS/Joo)

약 30 여명이 줄을 서서 발언을 하는데, 시간은 3분으로 제한된다. 이 발언은 대체로 “윈저 보고서”에서 말하는 세 가지의 “잠정 중지”(moratoria)에 대한 찬반이 주를 이루었고, 이 문제에 대한 대응들에 대한 찬반 논의가 이어졌다. 그 내용들이야 대체로 람베스 회의 전까지 계속된 내용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여기서 다시 소개할 필요는 없겠다.

다만 이런 모임에서 얻는 부가적인 생각을 나누면 이렇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재밌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고 본다. 아프리카에서 나온 주교는 단 두 명이었는데, 둘 다 수단 성공회 주교였다. 한 분은 이미 바깥 언론과 인터뷰에서 동성애자 주교인 “진 로빈슨 주교의 사임”을 언급했다는 뎅 주교였고, 같은 수단 교회의 다른 교구 주교도 나왔다. 흥미로운 점은 이 두 분의 주장이 전혀 달랐다는 것이다. 뎅 주교는 미국과 캐나다 성공회의 동성애자 주교 축성과 동성애자 커플에 대한 축복이 “죄”라고 말했다면, 다른 수단 주교는 왜 이것만으로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걸림돌로 삼아 함께 걸어 가고, 서로 협력해야 할 우리의 길을 분열시키느냐고 일축했다.

이 자유 발언을 듣고 보면서, 연전에 세계 성공회의 분란을 바라보는 개인적 확신을 확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이 논쟁은 사실 “보수적인 글로벌 사우스”와 “자유주의적인 글러벌 노스”의 갈등, 혹은 아프리카 / 아시아 일부와 아메리카 일부로 표면화되는 것이 아니라, 영국 혹은 미국 내의 보수파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과의 내부적인 갈등이 세계에 투사되고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수단의 두 주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자유 발언자들은 영국과 미국에서 나온 주교들이었다. 나는 이것을 “대리전”(proxy war)라고 부른다.

어찌보면 “글로벌 사우스”는 이 싸움에서 어느 한쪽의 용병인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이게 바로 여전히 세계 성공회 안에서 계속되고 있는 “식민지주의”의 진상이요, 그 표현이다. 이리 보면, 글로벌 사우스 혹은 미국의 보수파들이 이 문제와 관련하여 “제국주의” 운운하거나, 영국의 톰 라이트 주교가 동성애자 주교 서품을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비교하는 언술은 아이러니하다. 여기에 ‘악의적’이라고도 덧붙일 이도 있겠지만. 다만 모르고 하는 소리라면 무지한 것이고, 알고도 그런 것이라면 위선적인 것이라고 밖에 평할 수 없다.

발언자로 나선 어느 주교님의 말이 귀에 맴돈다. 어떤 보고서든 합의서든, 특히 관구장 회의와 같은 일치의 도구라고 부르는 것들이 실상은 “불일치” 혹은 “분열”의 도구가 되는 위험성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좋은 말들과 수사학이 넘쳐 나지만,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가 불일치를 확고히 하려는 것이라면, 이러한 도구 자체의 한계에 대한 성찰을 진척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헤아리는 것이 현재 세계 성공회 안에서 일어나는 논쟁이나, 진행중인 람베스 회의에 서 얻어야 할 진정한 식별이겠다.

소묘: 이 후끈한 토론장에 로완 캔터베리 대주교도 오셨다. 이미 자리가 꽉찬 마당에 앉을 자리가 없자, 다른 이들이 양보하는데도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 예의 흰 머리를 긁적이고 땀을 닦으며 끝까지 경청하셨다. 아래 사진에서 그분을 찾아보시라.

lc_windsor_hearing1.jpg

(ACNS/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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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responses so far ↓

  • 1 임종호 // Aug 1, 2008 at 4:11 am

    음, 이 부분은 매우 민감한 대목인데…

    세계성공회의 분열에 대한 분석은 주신부님의 견해에 기대기로 합니다.

    진보와 보수라는 명분을 개인적으로 저는 신뢰하지 않습니다.

    세계의 실상을 인정하고
    그 실상과 관계하는 자기자신을 열어놓고
    식별의 필요성에 진지하고
    그 한계에 정직하여
    깊이 기도하고 실제 실천하는 일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대산 기슭에 앉아 허운 스님의 설법책을
    뒤척이며 평소의 소신을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캔터베리 대주교님 찾았어요.
    음, 잔잔한 감동이 밀려오네요.

    늘, 감사!

  • 2 fr. joo // Aug 1, 2008 at 8:53 am

    임종호 / 좋은 말씀입니다. 진보/보수라는 껍데기와는 달리 속을 들여다 보면 이 둘 사이에는 늘 통하는데가 있습니다. 실상 문제는 어떤 형태로든 “근본주의” 혹은 “급진주의”의 문제입니다. 말뿌리가 같은 말이지요.

  • 3 차요한 // Sep 2, 2008 at 6:46 am

    제국의 지휘관과 아프리카의 용병의 식민주의적 유착관계는 찬성진영과 반대진영 모두에게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즉, 진보진영과 보수진영 모두 대리전을 수행하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만약 그렇다면, 진보진영의 용병들이 수적으로 의미있는 규모일까요? 아프리카 주교님들중에는 진보용병들이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만.

  • 4 fr. joo // Sep 2, 2008 at 6:54 am

    차요한 / 누군가를 “용병”으로 삼는 이를 진보라고 부를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그 혐의를 한쪽에만 두고 있습니다만. 그리고 이 논쟁은 보수-진보 간이라기 보다는 닫힘-열림 간의 논쟁이라고 봅니다.

  • 5 차요한 // Sep 3, 2008 at 7:14 am

    예, 닫힘-열림의 문제가 맞습니다. 말과 글의 편의상 진보-보수의 이분법을 사용하기가 쉽습니다만, 늘 한계를 절감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주 신부님과 임 신부님의 글을 공감하여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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