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람베스 통신

News & Musings from the Lambeth Conference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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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전통과 생명의 둥지 - 두 조상(彫像)을 보며

August 5th, 2008 · No Comments · 동정, 신학, 일상

말보다는 풍경 하나가 더 많고 깊은 것을 전해주는 일이 많다. 회의 기간 동안 캔터베리 대성당에 여러 차례 방문했다. 첫 방문 때부터 내 눈을 사로 잡은 것이 있다. 캔터베리 대성당 외부 벽에 세워져 있는 여러 조상(彫像)들이다.

lc_becket.jpg맨 처음 눈길을 잡는 것은 목이 잘려나간 조상이었다. 바로 순교자인 토마스 베케트 캔터베리 대주교(1118-1170)이다. 사실 왕권(헨리 2세)과 대결하여 순교당했던 탓에 캔터베리 대성당은 더욱 유명한 순교의 순례지가 되었다. 그래서 그의 입상이 가장 먼저 순례자들을 환대했으리라.

그러나 그는 또다른 수모를 당해야 했다. 헨리 8세는 다시 종교 권력을 세속 왕권에 굴복시키려 했다. 그렇다면 “대성당의 살인”(T.S.Elliot)의 주인공인 베케트라는 상징이 그리 곱게 보일리 없었다. 헨리 8세는 다시 베케트의 목을 쳤다. 목이 없는 그의 입상은 이런 권력을 둘러싼 싸움의 한 상징으로 남아 있다.

그 주위에 역사책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의 조상들이 펼쳐져 있다. 엘리자베스 1세도 입구 가장 양지 바른 쪽에 도도하게 서 있다. 그러나 이들은 내 눈을 사로 잡지 못했다.

성당 정문 입구 외곽으로 돌아서면 양지와 그늘이 교대로 돌아서는 자리에 또다른 조상이 서 있다.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그 명상적인 태도때문도 아니요, 그가 들고 있는 책에 대한 궁금증때문도 아니다. 바로 그 왼쪽 어깨 위에 틀어진 새의 둥지 탓이다.

바로 리차드 후커(Richard Hooker: 1544-1600)의 입상이다. 그는 이른바 성공회 신학의 “방법”을 정초한 사람이다. 성공회 신학은 확정된 교리적 체제나 교리적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방법”이요 “태도”이다. 그것이 성공회 신학의 전통이 되었다. 사실 그것이 전통을 살아 있게 하고, 그 전통 안에서 새로운 생명들이 둥지를 틀 수 있도록 한다. 리차드 후커의 입상은 그걸 웅변하고 있었다.

lc_Hooker.jpg

교회사가 야로슬라브 펠리칸은 [전통의 옹호] The Vindication of Tradition (1986)에 이런 경구를 남긴 바 있다.

“전통은 죽은 이들의 살아 있는 신앙이요, 전통주의는 살아 있는 이들의 죽은 신앙이다.” (Tradition is the living faith of the dead, traditionalism is the dead faith of the living.)

성당 방문객들의 관심이 귀퉁이에 있는 이 후커와 그 어깨 위에 튼 새의 둥지에도 닿았을까? 이 풍경은 세계 성공회와 람베스 회의에 어떤 뜻을 건네고 있을까?

독자들 가운데 혹시 캔터베리 대성당을 방문하실 일이 있거든, 성당 클로이스터 바깥 잔디밭에 바르게 누워 있는 윌리암 템플 대주교(와 그의 아버지 프레데릭 템플 대주교)와 그 건너편 그늘 벽에 박혀 있는 마이클 램지 대주교의 기념석도 살펴 보시면서, 리차드 후커 어깨 위에 둥지 튼 새들에게도 문안해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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