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람베스 통신

News & Musings from the Lambeth Conference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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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ctor, si monumentum requiris, circumspice

August 15th, 2008 · No Comments · 동정, 블로깅, 여정, 일상

(글 제목 역: “독자들이여, 기념비를 찾는다면, 주위를 둘러보라.”)

8월 3일 마침 성찬례를 마치고, 밤 늦게 런던으로 돌아와서 닷새를 런던에서 보냈다. 지인들을 만나고 런던에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둘러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들(브리티시 뮤지엄, 내셔널 갤러리,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 테이트 브리튼, 테이트 모던, 포토그래퍼스 갤러리 등)은 경이로움을 가져다 주었다.

지난 3주 간의 람베스 회의와 여러모로 비교되는 시간들이었다. 무엇보다도 “아름다움”과 “상상력”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우리가 삶 속에서 일구어야 할 아름다움과 상상력은 무엇인가? 교회(사목)와 신학은 사람들에게 어떤 아름다움을 우리 삶 속에서 꽃피울 수 있도록 도우며, 그 아름다운 삶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는가?

이 질문 속에서 바라보자니 3주간의 람베스 회의보다, 내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움들이 더욱 크고 장엄했다. 그것은 또다른 화엄(華嚴) 세계를 비추는 듯 했다.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바랄 것은 무엇인가?

세인트 폴 대성당을 방문해서는 곧장 지하 성당(crypt)을 찾았다. 이 성당의 건축가인 크리스토퍼 렌 경(Sir Christopher Wren: 1732-1723)의 무덤과 그 비문을 느껴 보기 위해서 였다.

Subtus conditur Hujus Ecclesias et Urbis Conditor, CHRISTOPHERUS WREN; Qui vixit annos ultra nonaginta, Non sibi, sed bono publico. Lector, si monumentum requiris, Circumspice. Obiit 25 Feb. MDCCXXIII., aetat. XCI.

“이 아래 이 교회와 도시의 건축자인 크리스토퍼 렌이 묻혀 있노니, 구십 평생을 넘게 살았으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공의 선을 위해 살았노라. 독자들이여, 그의 비문을 찾거든, 당신 주위를 둘러보라. 1723년 2월 25일 91세의 나이에 별세”

사실 이 비문말고 그 거대한 석조 건물은 거대함 이상의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원래 성당의 화재에서 살아남아 이 성당 벽 한켠에 서 있는 존 던(John Donne: 1572-1631)의 조상(effigy)은 그의 시 만큼이나 아름다웠다. (그는 이곳 세인트 폴 성당에서 주임 사제로 짧게 재임한 적이 있었다.)

그는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다. (사실 그의 설교의 한 대목이지만…)

“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Each is a piece of the continent…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

“그 누구도 섬처럼 떨어진 자가 아니며 그 전체요, 한 사람은 그 대륙의 한 부분일 뿐이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바로 그대를 위해 울리나니.”

웨스트민스터 성당(Westminster Abbey)에서는 또다른 시인들을 만났다. 성공회 신자였던 W. H. 오든 (W. H. Auden: 1907-1973)의 기념비문이 마음을 붙들었다. 그가 W.B. 예이츠(Yeats)를 기념하여 쓴 시의 한 구절이 그 자신을 기리는 말로 새겨져 있었다.

“In the prison of his days / Teach the free man how to praise.”

이 풍경과 짧은 비문들이 또다른 생각으로 이끌어 간다. 교회 안의 한 성직자로서, 세상에 던져진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나는 어떤 삶을 어떻게 가꾸어 낼 것인가? 어떻게 자유로운 이들에게 노래할 수 있도록 가르칠 것인가?

그러나 이는 한 개인의 성직자도, 세상의 모든 주교들도 만들어 주지는 못할 것이다. 자칫 그것은 그 주어진 권위때문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 삶 속에서 경험하는 하느님을 나누고, 이에 대한 깊은 성찰과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함께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삶을 위해 돕고, 이를 기뻐하고 향유하는 일이 필요하겠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삶의 아름다움을 기뻐하고 함께 향유하는 일도.

며칠 동안 런던에 머물면서 나는 그 향유에 대한 갈망으로 많이도 걸었다.

블로그 독자들이여, 생의 기념비를 찾는다면, 당신과 당신 주위의 삶을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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