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rss version="2.0"
	xmlns:content="http://purl.org/rss/1.0/modules/content/"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xmlns:atom="http://www.w3.org/2005/Atom"
	>
<channel>
	<title>Comments for 성공회 람베스 통신</title>
	<atom:link href="http://lambeth.skhcafe.org/comments/feed" rel="self" type="application/rss+xml" />
	<link>http://lambeth.skhcafe.org</link>
	<description>News &#38; Musings from the Lambeth Conference 2008</description>
	<pubDate>Sun, 20 May 2012 08:32:33 +0000</pubDate>
	<generator>http://wordpress.org/?v=2.5.1</generator>
		<item>
		<title>Comment on 경청 과정 - 아프리카 LGBT 다큐멘타리 by fr. joo</title>
		<link>http://lambeth.skhcafe.org/2008/07/27/111#comment-81</link>
		<dc:creator>fr. joo</dc:creator>
		<pubDate>Tue, 14 Apr 2009 03:50:49 +0000</pubDate>
		<guid isPermaLink="false">http://lambeth.skhcafe.org/2008/07/26/111#comment-81</guid>
		<description>Prisca 탁민영 / 우선, 부활 축하 인사부터 전합니다. 전 잘 지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민영씨도 잘 지내시죠? 벌씨 시간이 많이 흘렀군요. 지난 여름엔 서로들 바빠서 함께 많은 이야기 나누지 못한게 아쉽습니다. 다시 기회가 있겠지요. 부활의 생명을 한껏 즐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Prisca 탁민영 / 우선, 부활 축하 인사부터 전합니다. 전 잘 지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민영씨도 잘 지내시죠? 벌씨 시간이 많이 흘렀군요. 지난 여름엔 서로들 바빠서 함께 많은 이야기 나누지 못한게 아쉽습니다. 다시 기회가 있겠지요. 부활의 생명을 한껏 즐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p>
]]></content:encoded>
	</item>
	<item>
		<title>Comment on 경청 과정 - 아프리카 LGBT 다큐멘타리 by Prisca(탁민영)</title>
		<link>http://lambeth.skhcafe.org/2008/07/27/111#comment-80</link>
		<dc:creator>Prisca(탁민영)</dc:creator>
		<pubDate>Mon, 13 Apr 2009 22:37:48 +0000</pubDate>
		<guid isPermaLink="false">http://lambeth.skhcafe.org/2008/07/26/111#comment-80</guid>
		<description>안녕하세요, 오랫만에 이곳에 다시 들렀어요..새삼 다큐멘터리 봤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네요. 회의를 도우며 저도 많이 배웠지요. 건강하시죠?</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안녕하세요, 오랫만에 이곳에 다시 들렀어요..새삼 다큐멘터리 봤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네요. 회의를 도우며 저도 많이 배웠지요. 건강하시죠?</p>
]]></content:encoded>
	</item>
	<item>
		<title>Comment on 배신, 식민주의, 그리고 캔터베리 대주교 by 차요한</title>
		<link>http://lambeth.skhcafe.org/2008/08/03/112#comment-69</link>
		<dc:creator>차요한</dc:creator>
		<pubDate>Fri, 05 Sep 2008 07:56:05 +0000</pubDate>
		<guid isPermaLink="false">http://lambeth.skhcafe.org/2008/08/15/112#comment-69</guid>
		<description>옳으신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내용과 방법의 측면 모두에서 수세적이지요. 성공회 복음주의 저자 그룹의 사상이 한반도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어떤 새로움을 전해줄 수도 없고 또 성공회정신의 장점들을 말해줄 수도 없습니다. 다만 평균보다 조금 더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며 개방적인 신앙을 요청하는 데에 그칠 뿐입니다. 또 이들이 작금의 성공회정신을 선도하는 사상가들도 아니구요.
특별히 말미에 제안하신 내용을 실제의 대화에 어떻게 도입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옳으신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내용과 방법의 측면 모두에서 수세적이지요. 성공회 복음주의 저자 그룹의 사상이 한반도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어떤 새로움을 전해줄 수도 없고 또 성공회정신의 장점들을 말해줄 수도 없습니다. 다만 평균보다 조금 더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며 개방적인 신앙을 요청하는 데에 그칠 뿐입니다. 또 이들이 작금의 성공회정신을 선도하는 사상가들도 아니구요.<br />
특별히 말미에 제안하신 내용을 실제의 대화에 어떻게 도입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p>
]]></content:encoded>
	</item>
	<item>
		<title>Comment on 배신, 식민주의, 그리고 캔터베리 대주교 by fr. joo</title>
		<link>http://lambeth.skhcafe.org/2008/08/03/112#comment-68</link>
		<dc:creator>fr. joo</dc:creator>
		<pubDate>Thu, 04 Sep 2008 02:18:22 +0000</pubDate>
		<guid isPermaLink="false">http://lambeth.skhcafe.org/2008/08/15/112#comment-68</guid>
		<description>차요한 / 답변은 아니고요, 오타가 난 "복음 주위"가 흥미로운 생각을 떠올리게 해서 몇마디 적습니다.  

우리 (한국) 성공회 신자들이 다른 개신교 신자들과 접점을 만들기 위해서, 이들에게 이미 알려진 존 스토트나 니키 검블이나, 혹은 알리스터 맥그래스, 그리고 이제는 N.T. 라이트를 예를 들어 거론하곤 합니다. 그 좋은 의도를 나무라거나 거절할 일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이러면 '성공회'는 개신교인들에게 이상한 집단 혹은 이단이라는 소리는 절대로 하지 않을테니까요. ㅎㅎ 그러나, 딱, 여기까지입니다. 

좀더 깊이 살펴보면, 이런 태도 자체가 무척 수세적, 혹은 수동적입니다. 다른 개신교에서 소개한 후에야, 그들이 그들 입맛대로 해석해서 받아들인 이후에야, 우리가 그것을 따라가고, 거기에 기대어 우리를 홍보하려고 합니다. 이래서야 우리가 그네들을 넘어설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수세적인 입장에서는 우리는 그 사람들이취사선택한 입맛에 길들여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 전통의 풍요로운 다양성의 전통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수용과 해석의 주체가 누구냐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성공회 내의 복음주의자들을 수용하려는 우리(한국) 성공회의 태도가 매우 비주체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런 현상에는 제 자신을 포함한 한국의 성공회 학자들의 탓이 매우 크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또 성직자들의 탓도 큽니다. 

한번 생각해 볼 문제여서 이 자리에 적어봤습니다. 

그나저나, "위상과 위치"를 궁금해 하는 분에게는 그걸로 판단하지 말고, 실제로 "복음 주위"(^^)를 신학적 둥지로 삼았는지를 가지고 판단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으면 합니다. 이러면 사람들에게 너무 불친절한 답변이 될까요?  복음은 없고 "주의"만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드는 생각이었습니다.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차요한 / 답변은 아니고요, 오타가 난 &#8220;복음 주위&#8221;가 흥미로운 생각을 떠올리게 해서 몇마디 적습니다.  </p>
<p>우리 (한국) 성공회 신자들이 다른 개신교 신자들과 접점을 만들기 위해서, 이들에게 이미 알려진 존 스토트나 니키 검블이나, 혹은 알리스터 맥그래스, 그리고 이제는 N.T. 라이트를 예를 들어 거론하곤 합니다. 그 좋은 의도를 나무라거나 거절할 일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이러면 &#8216;성공회&#8217;는 개신교인들에게 이상한 집단 혹은 이단이라는 소리는 절대로 하지 않을테니까요. ㅎㅎ 그러나, 딱, 여기까지입니다. </p>
<p>좀더 깊이 살펴보면, 이런 태도 자체가 무척 수세적, 혹은 수동적입니다. 다른 개신교에서 소개한 후에야, 그들이 그들 입맛대로 해석해서 받아들인 이후에야, 우리가 그것을 따라가고, 거기에 기대어 우리를 홍보하려고 합니다. 이래서야 우리가 그네들을 넘어설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p>
<p>이렇게 수세적인 입장에서는 우리는 그 사람들이취사선택한 입맛에 길들여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 전통의 풍요로운 다양성의 전통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수용과 해석의 주체가 누구냐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성공회 내의 복음주의자들을 수용하려는 우리(한국) 성공회의 태도가 매우 비주체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p>
<p>물론 이런 현상에는 제 자신을 포함한 한국의 성공회 학자들의 탓이 매우 크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또 성직자들의 탓도 큽니다. </p>
<p>한번 생각해 볼 문제여서 이 자리에 적어봤습니다. </p>
<p>그나저나, &#8220;위상과 위치&#8221;를 궁금해 하는 분에게는 그걸로 판단하지 말고, 실제로 &#8220;복음 주위&#8221;(^^)를 신학적 둥지로 삼았는지를 가지고 판단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으면 합니다. 이러면 사람들에게 너무 불친절한 답변이 될까요?  복음은 없고 &#8220;주의&#8221;만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드는 생각이었습니다. <img src='http://lambeth.skhcafe.org/wp-includes/images/smilies/icon_wink.gif' alt=';)' class='wp-smiley' /></p>
]]></content:encoded>
	</item>
	<item>
		<title>Comment on 배신, 식민주의, 그리고 캔터베리 대주교 by 차요한</title>
		<link>http://lambeth.skhcafe.org/2008/08/03/112#comment-64</link>
		<dc:creator>차요한</dc:creator>
		<pubDate>Thu, 04 Sep 2008 01:00:42 +0000</pubDate>
		<guid isPermaLink="false">http://lambeth.skhcafe.org/2008/08/15/112#comment-64</guid>
		<description>개인적인 이유는 없습니다만, 바람숨결님이 일전에 적으신 것 처럼, 그 분의 유명세가 한국 내에서 점점 커지는지라, 소위 복음주위를 자신의 신학적 둥지로 삼는 분들이 책으로 만나는 라이트 주교님 뿐만 아니라 성공회공동체 안에서 라이트 주교님의 위상과 위치 등에 대해 종종 물어보기 때문에 궁금했습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개인적인 이유는 없습니다만, 바람숨결님이 일전에 적으신 것 처럼, 그 분의 유명세가 한국 내에서 점점 커지는지라, 소위 복음주위를 자신의 신학적 둥지로 삼는 분들이 책으로 만나는 라이트 주교님 뿐만 아니라 성공회공동체 안에서 라이트 주교님의 위상과 위치 등에 대해 종종 물어보기 때문에 궁금했습니다^^</p>
]]></content:encoded>
	</item>
	<item>
		<title>Comment on 람베스 회의, 무엇을 남겼나? by fr. joo</title>
		<link>http://lambeth.skhcafe.org/2008/09/02/124#comment-63</link>
		<dc:creator>fr. joo</dc:creator>
		<pubDate>Wed, 03 Sep 2008 15:46:27 +0000</pubDate>
		<guid isPermaLink="false">http://lambeth.skhcafe.org/2008/09/02/124#comment-63</guid>
		<description>차요한 / 이 블로그의 성실한 독자가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량이 좁아서 그리 많은 독자를 품지 못했지만, 적어도 몇이나마 성실한 독자를 만난 것이 큰 기쁨이었습니다. 좀더 많은 이야기를 기도와 성찰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차요한 / 이 블로그의 성실한 독자가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량이 좁아서 그리 많은 독자를 품지 못했지만, 적어도 몇이나마 성실한 독자를 만난 것이 큰 기쁨이었습니다. 좀더 많은 이야기를 기도와 성찰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p>
]]></content:encoded>
	</item>
	<item>
		<title>Comment on 배신, 식민주의, 그리고 캔터베리 대주교 by fr. joo</title>
		<link>http://lambeth.skhcafe.org/2008/08/03/112#comment-62</link>
		<dc:creator>fr. joo</dc:creator>
		<pubDate>Wed, 03 Sep 2008 15:42:17 +0000</pubDate>
		<guid isPermaLink="false">http://lambeth.skhcafe.org/2008/08/15/112#comment-62</guid>
		<description>차요한 / 어떤 힘에 관련된 갈등을 "권력욕"이라고 표현하면, 우리말에서는 매우 부정적인 '한 개인의 욕심'으로 치부되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정치가 그렇듯이, 글로벌 사우스의 처지는 그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좀더 (교회 및 사회의) 정치적인 관계가 어떤 집단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봅니다. 이에 대해서는 여기저기에 이미 적어 두었습니다. 

캔터베리 대주교를 일치의 상징적 도구로 보는 것에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오롬비 대주교의 비판도 이해할 만 합니다. 다만 제 생각은, 오래 전부터,  그리고 여러 교회 전통들 안에서 이용되고 있는 전통적인 원칙인 "Primus inter pares"를 되새기고 지키는 게 낫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 체제는 "교황제" 아니면 "개교회주의"로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열거하신 이른바 "복음주의" 신학자들 (혹은 교회 지도자) 간에도 여러 차이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니키 검블(알파 코스 - 신학자는 아니지만)과 존 스토트는 성령과 교회에 대한 이해에서 다른 점들이 보입니다. 스토트(영국)보다는 패커(캐나다)가 훨씬 "퓨리턴"에 가깝습니다. 맥그래스는 그 어디서도 '동성애'와 같은 주제를 다루지 않고, 교회의 실질적인 사목적인 문제에 거리를 둡니다. C.S. 루이스는 이미 오래 묵어서 하나의 전통이 되었고 '복음주의'라는 틀에 잡기에는 어렵고 더 큰 분입니다. 그래서 이들을 싸잡아서 하나의 진영으로 보기보다는 그냥 개별적으로 접근하고 배우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톰 라이트는 독특한 분입니다. 그는 캐나다에서 가르친 적이 있고, 그때문인지 영국보다는 오히려 북미에 많은 독자(스스로 '건전한 복음주의자'라고 일컫는)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이 분은 또 글로벌 사우스 혹은 영국 내의 수구적인 보수주의와도 여러번 선을 그은 적이 있습니다. 중간에 서는 것이 어려운 탓일까요? 아니면 중간에서 훈수두는 것이 쉬워서 일까요? 그분의 글은 아름다운 수사가 넘치는데 내용에서는 신선하고 도전적인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은 그분이 세계성공회에 관련하여 쓰신 글에 한한 것입니다. 그 분의 저작들은 이와는 차원이 좀 다르다는게 중론입니다. 특별히 다른 여느 '복음주의' 성서학자(?)들과는 큰 차별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그 분의 진면목까지 알아보시려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 분보다 더 애써서 살펴볼 대가들이 훨씬 많은데요.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차요한 / 어떤 힘에 관련된 갈등을 &#8220;권력욕&#8221;이라고 표현하면, 우리말에서는 매우 부정적인 &#8216;한 개인의 욕심&#8217;으로 치부되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정치가 그렇듯이, 글로벌 사우스의 처지는 그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좀더 (교회 및 사회의) 정치적인 관계가 어떤 집단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봅니다. 이에 대해서는 여기저기에 이미 적어 두었습니다. </p>
<p>캔터베리 대주교를 일치의 상징적 도구로 보는 것에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오롬비 대주교의 비판도 이해할 만 합니다. 다만 제 생각은, 오래 전부터,  그리고 여러 교회 전통들 안에서 이용되고 있는 전통적인 원칙인 &#8220;Primus inter pares&#8221;를 되새기고 지키는 게 낫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 체제는 &#8220;교황제&#8221; 아니면 &#8220;개교회주의&#8221;로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p>
<p>열거하신 이른바 &#8220;복음주의&#8221; 신학자들 (혹은 교회 지도자) 간에도 여러 차이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니키 검블(알파 코스 - 신학자는 아니지만)과 존 스토트는 성령과 교회에 대한 이해에서 다른 점들이 보입니다. 스토트(영국)보다는 패커(캐나다)가 훨씬 &#8220;퓨리턴&#8221;에 가깝습니다. 맥그래스는 그 어디서도 &#8216;동성애&#8217;와 같은 주제를 다루지 않고, 교회의 실질적인 사목적인 문제에 거리를 둡니다. C.S. 루이스는 이미 오래 묵어서 하나의 전통이 되었고 &#8216;복음주의&#8217;라는 틀에 잡기에는 어렵고 더 큰 분입니다. 그래서 이들을 싸잡아서 하나의 진영으로 보기보다는 그냥 개별적으로 접근하고 배우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p>
<p>톰 라이트는 독특한 분입니다. 그는 캐나다에서 가르친 적이 있고, 그때문인지 영국보다는 오히려 북미에 많은 독자(스스로 &#8216;건전한 복음주의자&#8217;라고 일컫는)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이 분은 또 글로벌 사우스 혹은 영국 내의 수구적인 보수주의와도 여러번 선을 그은 적이 있습니다. 중간에 서는 것이 어려운 탓일까요? 아니면 중간에서 훈수두는 것이 쉬워서 일까요? 그분의 글은 아름다운 수사가 넘치는데 내용에서는 신선하고 도전적인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은 그분이 세계성공회에 관련하여 쓰신 글에 한한 것입니다. 그 분의 저작들은 이와는 차원이 좀 다르다는게 중론입니다. 특별히 다른 여느 &#8216;복음주의&#8217; 성서학자(?)들과는 큰 차별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그 분의 진면목까지 알아보시려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 분보다 더 애써서 살펴볼 대가들이 훨씬 많은데요. <img src='http://lambeth.skhcafe.org/wp-includes/images/smilies/icon_wink.gif' alt=';)' class='wp-smiley' /></p>
]]></content:encoded>
	</item>
	<item>
		<title>Comment on 윈저 보고서 계속 논의 - 공청회 by 차요한</title>
		<link>http://lambeth.skhcafe.org/2008/07/28/84#comment-61</link>
		<dc:creator>차요한</dc:creator>
		<pubDate>Wed, 03 Sep 2008 07:14:01 +0000</pubDate>
		<guid isPermaLink="false">http://lambeth.skhcafe.org/2008/07/28/84#comment-61</guid>
		<description>예, 닫힘-열림의 문제가 맞습니다. 말과 글의 편의상 진보-보수의 이분법을 사용하기가 쉽습니다만, 늘 한계를 절감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주 신부님과 임 신부님의 글을 공감하여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예, 닫힘-열림의 문제가 맞습니다. 말과 글의 편의상 진보-보수의 이분법을 사용하기가 쉽습니다만, 늘 한계를 절감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주 신부님과 임 신부님의 글을 공감하여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p>
]]></content:encoded>
	</item>
	<item>
		<title>Comment on 람베스 회의, 무엇을 남겼나? by 차요한</title>
		<link>http://lambeth.skhcafe.org/2008/09/02/124#comment-60</link>
		<dc:creator>차요한</dc:creator>
		<pubDate>Wed, 03 Sep 2008 07:10:41 +0000</pubDate>
		<guid isPermaLink="false">http://lambeth.skhcafe.org/2008/09/02/124#comment-60</guid>
		<description>드디어 오늘로 모든 글을 보았습니다. 방학보다 학기 중에 오히려 여유가 있습니다^^ 신부님의 노고와 열의 덕분에 서울에서 편안히 회의 동정을 알 수 있었고, 여러 중요한 이슈들에 대해서 좋은 통찰을 접하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신학적 성찰과 전례적 의미는 언제나 일상의 삶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감사합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드디어 오늘로 모든 글을 보았습니다. 방학보다 학기 중에 오히려 여유가 있습니다^^ 신부님의 노고와 열의 덕분에 서울에서 편안히 회의 동정을 알 수 있었고, 여러 중요한 이슈들에 대해서 좋은 통찰을 접하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신학적 성찰과 전례적 의미는 언제나 일상의 삶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감사합니다^^</p>
]]></content:encoded>
	</item>
	<item>
		<title>Comment on 증언과 성찬례, 그리고 순교 by 차요한</title>
		<link>http://lambeth.skhcafe.org/2008/08/04/116#comment-59</link>
		<dc:creator>차요한</dc:creator>
		<pubDate>Wed, 03 Sep 2008 06:26:49 +0000</pubDate>
		<guid isPermaLink="false">http://lambeth.skhcafe.org/2008/08/04/116#comment-59</guid>
		<description>우리는 2003년 솔로몬 군도 안에서 벌어졌던 인종 간 대립의 화해를 위해 일하다가 순교한 성공회 프란시스칸 수사들의 이름을 교회력에 올리는 순서를 가졌다.
-대한성공회 교회력도 이 사건을 보여주고, 이들의 증언이 너른 감동을 전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우리는 2003년 솔로몬 군도 안에서 벌어졌던 인종 간 대립의 화해를 위해 일하다가 순교한 성공회 프란시스칸 수사들의 이름을 교회력에 올리는 순서를 가졌다.<br />
-대한성공회 교회력도 이 사건을 보여주고, 이들의 증언이 너른 감동을 전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p>
]]></content:encoded>
	</item>
</channel>
</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