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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성공회 람베스 통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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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News &#38; Musings from the Lambeth Conference 2008</description>
	<pubDate>Wed, 03 Sep 2008 16:20:22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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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람베스 회의, 무엇을 남겼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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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2 Sep 2008 06:12:27 +0000</pubDate>
		<dc:creator>fr. joo</dc:creator>
		
		<category><![CDATA[동정]]></category>

		<category><![CDATA[성공회 계약]]></category>

		<category><![CDATA[이슈]]></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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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주: 성공회 신문 편집인의 요청으로 이번 람베스 회의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급하게 적었다. 그런데 지면 관계 상 여러 내용이 빠져서, 여기 저기를 생략해서 원래보다 짧은 글이 나갔다. 아래에 원래 글을 옮겨 놓아 참조하도록 돕고자 한다.)
람베스 회의?
2008년 람베스 회의가 끝난 마당에야 비로소 람베스 회의를 소개하라는 원고 청탁을 받았다. 이 참에 몇 가지 상반될 듯한 생각을 적어볼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주: 성공회 신문 편집인의 요청으로 이번 람베스 회의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급하게 적었다. 그런데 지면 관계 상 여러 내용이 빠져서, 여기 저기를 생략해서 원래보다 짧은 글이 나갔다. 아래에 원래 글을 옮겨 놓아 참조하도록 돕고자 한다.)</p>
<p><strong>람베스 회의?</strong></p>
<p>2008년 람베스 회의가 끝난 마당에야 비로소 람베스 회의를 소개하라는 원고 청탁을 받았다. 이 참에 몇 가지 상반될 듯한 생각을 적어볼 수 있겠다. “워낙, 우리는 세계 성공회에 관한 일에 무관심해서 성직자나 신자들이나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혹은 “람베스 회의는 그야말로 주교님들만의 회의인데다, 성직자나 신자들이 넘보고 염려하기에 너무 큰 일들이니 잠자코 사후에 보고나 들을 일이다.” 혹은 “그 회의가 중요하다고는 들었는데, 어떤 법적, 치리적 권한이 없으니, 무슨 결정이 나오는 우리 교회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더라.” 그도 아니면, “람베스 회의가 도대체 뭐야? 우리와 무슨 상관인데?”</p>
<p>이런 물음은 뜬금없이 지어낸 말이 아니라, 실제로 람베스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이 회의에 대한 영국 성공회 신자들의 반응을 보도한 영국 신문들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모으고 고쳐서 옮긴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무관심한 표정들에도 람베스 회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엿보인다.</p>
<p>그럼 우리 한국 성공회 신자들에게는? 아무래도 이들보다는 한국 성공회 신자들이 이 회의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고,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듯하다. 어머니 연합회 성가대가 와서 콘서트를 열고, 관구 단위에서 한반도 평화 포럼(TOPIK)과 같은 특별 시간을 가진 관구는 별로 없었던 것만 봐도, 우리 한국 성공회가 얼마나 람베스 회의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p>
<p>이러한 관심과 함께 람베스 회의를 둘러싼 이야기, 그리고 이번 회의의 내용과, 그 결과물들이 한국 성공회, 나아가 세계 성공회의 미래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일은 우리 교회의 선교 활동을 세계 다른 교회들과 지속적으로 나누기 위해서 매우 중요하겠다.</p>
<p><strong>람베스 회의 역사는 세계 성공회의 역사</strong></p>
<p>간단히 말해서, 람베스 회의는 10년마다 세계 성공회의 모든 주교들이 캔터베리 대주교의 초청으로 모여 열리는 주교 회의이다. 다른 의견도 더러 있지만, 람베스 회의는 세계 성공회의 실질적인 형성을 의미한다는 역사적 중요성을 갖고 있다. 첫 람베스 회의가 열리기 전인 1867년까지만 해도 성공회는 영국성공회, 캐나다성공회, 그리고 미국성공회와 같은 독립적 교회들과 이런 교회들의 선교로 세워진 여러 나라의 지역 교회들의 모임에 불과했다. 그러나 성공회 전통을 공유하고 있는 교회들의 세계적인 공동체적인 친교(communion)를 통하여 선교적인 문제들을 함께 논의하고 서로 돕기 위해서, 캐나다성공회가 제안하고, 캔터베리 대주교가 초청하여 소집하는 방식으로 첫 모임이 열렸다.</p>
<p>이후부터 세계성공회는 캔터베리 대주교와 람베스 회의를 통하여 세계 여러 성공회들의 연대감과 일치감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람베스 회의와 캔터베리 대주교가 세계의 어떤 관구나 교구에 법적 치리적 권한을 갖는 기구가 되지 않을까 하는 갖지 의구심도 있었다. 이 염려때문에 첫 람베스 회의에는 요크 대주교를 포함한 여러 주교들이 불참했다. 결국 람베스 회의는 이런 권한과는 전혀 관계없이 세계성공회의 선교를 활성화하기 위한 주교들의 선교적, 사목적, 신학적 논의 구조가 되었고, 이러한 대화 구조를 세계 성공회 일치의 한 도구로 삼았다.</p>
<p><strong>일치와 대화를 위한 람베스 회의</strong></p>
<p>그런데 1998년 람베스 회의에서 이러한 일치에 난기류가 생겼다. 그 이전부터 세계 성공회 안에서 논쟁 중이던 [인간의 성] 문제와 관련하여, 1998년 람베스 회의는 서로 상이한 듯 보이는 절충안을 [결의안]으로 채택했다. 즉 동성애는 성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내용과 함께, 동성애자들이 차별받아서는 안되고 교회는 그에 대한 보살핌을 지속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전반적인 우세와 강조는 전자에 있었다.</p>
<p>이런 참에 몇 가지 일이 벌어졌다. 2002년 캐나다 성공회 웨스트민스터 교구는 동성애자의 시민적 결합을 축복하는 예식을 통과시켰다. 2003년 미국 성공회 뉴햄프셔 교구 의회는 교구장 출마 시기에 동성애자인 것을 공개적으로 밝힌 진 로빈슨 신부를 주교로 선출하고, 몇 달 후 미국성공회 관구 의회를 통해서 승인을 받아 당해 11월 주교로 성품했다. 한편 이에 반대하여 몇몇 교회들과 성직자, 그리고 다른 나라의 관구들이 미국 교구 관할 지역에 자신들의 사제와 주교를 보냈다. 다시 말해 교구 관할 지역 침범이 일어난 것이다.</p>
<p>2004년, 캔터베리 대주교는 람베스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이러한 논란이 야기할 교회의 분열을 치유하기 위한 대책을 모색하였고, 그 결과 나온 [윈저 보고서]는 이 일애 연루된 교회들이 이 모든 행동들을 잠정 중지하고 일치를 판가름할 [성공회 계약] 작성을 안했다. 그리고 지난 몇년 사이에 [성공회 계약]의 초안들이 나왔다.</p>
<p><strong>하느님의 선교를 통한 일치</strong></p>
<p>2008년 람베스 회의는 세계 성공회는 이러한 분열 위기를 극복해야 할 과제를 안고 열렸다. 회의에 앞서 캔터베리 대주교는 성령강림절 특별 서신에서 이번 람베스 회의가 관심해야 할 방향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p>
<p>“세례받은 그리스도인이요, 그리스도의 양떼를 보살피는 사목자로서, 우리는 어떤 낮은 단계의 합의를 찾으려거나, 서로 정중하게 의견을 달리 할 수 있다는 식의 단순한 동의를 구하자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내려오시는 성령의 불을 구합니다. 그 불은 예수 안에서 유일하게 제공된 하느님의 은총을 신실하게 선포하기 위하여 서로를 위하여, 서로에게 책임있게 행동하고, 그리고 하느님께는 책임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더해 줍니다. 이러한 깨달음의 길은 고통스러울는지 모릅니다. 성령께서는 십자가를 피하는 길을 가르쳐 주시지 않습니다. 이 길을 통해서만 우리는 이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즉 가난과 폭력과 불의로 각인된 세계에 도전하는 하느님 나라의 표지로 드러날 것입니다.”</p>
<p>“람베스 회의의 잠재력은 매우 큽니다. 우리가 관심하는 바는 우리 세계성공회 공동체를 강화시키려는 것이고, 모든 주교들이 선교에 좀더 효과적으로 참여하도록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이신 성령만이 영원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길 안에서 우리를 묶어 줄 수 있습니다. 오직 하느님이신 성령만이 우리에게 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를 알리기 위한 말씀을 주실 수 있습니다.”</p>
<p><strong>선교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strong></p>
<p>그래서 2008년 람베스 회의의 주제는 “선교 안에서 바라본 주교”였다. 하느님의 선교적 명령 안에서 주교들이 지도자로서 어떻게 교회를 섬기고, 이를 위해 어떻게 협력할 것인지를 스스로 훈련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이를 위해서 세계 성공회가 각자 처한 선교적 상황의 다양성에 대한 상호 이해를 증진하는 것이 이번 람베스 회의가 바라는 것이었다.</p>
<p>이를 위해서, 2008년 람베스 회의는 캔터베리 대주교가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이끄는 3일간의 피정과 더불어, 매일 성서 연구(요한 복음), 그리고 인다바 그룹을 통하여 선교 주제와 상황을 경청하는 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루 하루의 일정은 성공회의 전통적인 전례 생활(성찬례와 성무일도)을 통해 그 틀이 마련되었다.</p>
<p>이번 람베스 회의가 과거와 다른 점은, 회의 결과 어떤 결의안이나 선언서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신, 그동안에 기도하고 공부하고 경청하며 나눈 고민들을 반영한 보고서를 채택하고, 이를 통해서 지속적인 선교적 고민과, 대화와 일치를 위한 노력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이런 발판의 시작은 “인다바”라는 대화 모임을 통한 것이었다.</p>
<p>“‘인다바’는 줄루(Zulu) 말로 어떤 목적을 갖고 토의하려는 모임을 가리킨다. 이는 참여하는 과정과 참여하는 방법이라는 이중 의미를 갖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 공동체에 닥쳐있는 도전들에 관하여 서로 경청하고, 이를 세계 성공회에 적용시키려는 것이다&#8230;이러한 토론의 목적은 서로의 다름 속에서도 사람들을 하나로 묶기 위한 좀더 깊은 수렴점을 찾으려는 것이며,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좀더 깊은 이해에 도달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내’ 생각보다는 그 이면에 있는 생각들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이뤄질 것이다.” (람베스 자료집)</p>
<p>물론 이러한 대화와 경청이 생각만큼 완벽히 진행되지는 않았다. 대다수 650여명의 주교들이 참석했지만, 무엇보다도 람베스 회의 개최 자체를 반대하는 많은 주교들이, 람베스 회의 이전에 예루살렘에서 회의를 열고 캔터베리 대주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으며, 이에 동조하는 약 150 여명의 주교들이 참석과 대화를 거부한 것이다.</p>
<p>그러나 참석한 대부분의 주교들 사이에서 확인된 것은, 세계 성공회가 그 어떤 분열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선교를 위한 상호 협력과, 각각의 선교 상황이 가져다 주는 새로운 도전에 대해서 서로 열려 있어야 하며, 서로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람베스 회의 2008년 보고서는 논쟁적인 여러 문제들보다는, 무엇보다도 성공회 전통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로서, 이 세상에 주어진 선교 사명에 어떻게 충실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p>
<p>실제로 람베스 회의 기간 동안 주교들은 세계의 가난과 질병을 퇴치하기 위한 가두 행진을 런던 시내에서 벌였고, 편만한 사회의 불의와 지구 환경 문제 해결에 공동 협력하자는 선교적 일치를 다짐했다. 이런 점에서 한국 성공회와 일본 성공회는 갈등하고 분열하는 세계 성공회에 매우 강력하고 도전적인 화해와 일치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로써 세계성공회는 양 교회의 동북아시아의 평화 선교 협력을 본받기로 하고, 그 노력을 보고서에 반영하기도 했다.</p>
<p><strong>람베스 회의는 무엇을 남겼나?</strong></p>
<p>2008년 람베스 회의의 결과와 세계 성공회의 미래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다만 이번 회의는 세계성공회의 위기를 야기시키는 문제들에 대해서 서로 대화를 시작했다는 데에 큰 의의를 둘 수 있다. 이러한 대화는 몇 가지 논쟁적인 사안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교라는 좀더 큰 지평 안에서, 각각의 선교적 상황과 주어진 사명 안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바로 거기에 어떤 희망이 존재하리라는 것이다. 이는 역으로, 그렇지 않다면, 성공회의 일치와 선교의 미래는 어두우리라는 전망이기도 하다.</p>
<p>람베스 회의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최근 캔터베리 대주교는 람베스 회의 이후 세계 성공회에 보낸 사목 서신에서 이 염려와 희망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p>
<p>“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신뢰하시고, 하느님의 여러 선물을 세계 성공회에게 주시는 것을 함께 감사합니다&#8230; 우리는 세계 성공회를 통하여 주시려는 더 많은 선물을 갖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시려는 은총과 도움을 요청하며, 이를 받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뿌릴 씨와 먹을 빵을 농부에게 마련해 주시는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도 뿌릴 씨를 마련해 주시고 그것을 몇 갑절로 늘려주셔서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해주십니다’ (2 고린 9: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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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블로그를 접으며 - 감사의 말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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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5 Aug 2008 20:08:13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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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품었던 계획에 비추면 보잘 것 없으나, 부족한 대로 이 블로그를 접습니다. 한동안의 외유가 끝나는 시점입니다. 그동안 응원해 주시고 격려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여러모로 후원해 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주신 성원에 못미쳤지만 널리 헤아려 주십시오. 그 따뜻한 마음들에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각지에서 댓글로 응원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서로 소통하고 격려하는 모본을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품었던 계획에 비추면 보잘 것 없으나, 부족한 대로 이 블로그를 접습니다. 한동안의 외유가 끝나는 시점입니다. 그동안 응원해 주시고 격려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p>
<p>특별히 여러모로 <a href="http://lambeth.skhcafe.org/support" target="_blank">후원해 주신 분들</a>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주신 성원에 못미쳤지만 널리 헤아려 주십시오. 그 따뜻한 마음들에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p>
<p>각지에서 댓글로 응원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서로 소통하고 격려하는 모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참 고맙습니다.</p>
<p>보이지 않는 원근 각지의 독자들에게 두 손 모아 사례합니다. 그 관심과 소리없는 격려가 이 블로그를 만들게 했습니다. 모든 방문객들에게 감사드립니다.</p>
<p>제 몸도 집에 돌아왔으니, 블로그도 <a href="http://viamedia.or.kr">제 집</a>으로 돌아와야 할 때입니다. 이제 거기서들 뵙지요.</p>
<p>대화와 소통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만드신 생명의 아름다움을 우러르며, 자유와 정의와 사랑을 나누고자 하는 모든 분들께 깊이 머리 숙여 합장.</p>
<p>주낙현 신부</p>
<p><a href="http://viamedia.or.kr">http://viamedia.or.kr</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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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Lector, si monumentum requiris, circumspic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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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5 Aug 2008 19:55:22 +0000</pubDate>
		<dc:creator>fr. joo</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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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세인트 폴 대성당 크리스토퍼 렌 묘비명에 대한 찬반 논란 - 결국에 간단한 내용만 적기로 했다.... 또하는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한 것을 기뻐하고 향유하는 일 며칠 동안 런던에 머물면서 나는 그 향유에 대한 갈망으로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을 돌아 다녔다.</p>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글 제목 역: &#8220;독자들이여, 기념비를 찾는다면, 주위를 둘러보라.&#8221;)</p>
<p>8월 3일 마침 성찬례를 마치고, 밤 늦게 런던으로 돌아와서 닷새를 런던에서 보냈다. 지인들을 만나고 런던에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둘러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들(브리티시 뮤지엄, 내셔널 갤러리,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 테이트 브리튼, 테이트 모던, 포토그래퍼스 갤러리 등)은 경이로움을 가져다 주었다.</p>
<p>지난 3주 간의 람베스 회의와 여러모로 비교되는 시간들이었다. 무엇보다도 &#8220;아름다움&#8221;과 &#8220;상상력&#8221;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우리가 삶 속에서 일구어야 할 아름다움과 상상력은 무엇인가? 교회(사목)와 신학은 사람들에게 어떤 아름다움을 우리 삶 속에서 꽃피울 수 있도록 도우며, 그 아름다운 삶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는가?</p>
<p>이 질문 속에서 바라보자니 3주간의 람베스 회의보다, 내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움들이 더욱 크고 장엄했다. 그것은 또다른 화엄(華嚴) 세계를 비추는 듯 했다.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바랄 것은 무엇인가?</p>
<p>세인트 폴 대성당을 방문해서는 곧장 지하 성당(crypt)을 찾았다. 이 성당의 건축가인 <a href="http://en.wikipedia.org/wiki/Christopher_Wren" target="_blank">크리스토퍼 렌 경(Sir Christopher Wren: 1732-1723)</a>의 무덤과 그 비문을 느껴 보기 위해서 였다.</p>
<p>Subtus conditur Hujus Ecclesias et Urbis Conditor, CHRISTOPHERUS WREN; Qui vixit annos ultra nonaginta, Non sibi, sed bono publico. Lector, si monumentum requiris, Circumspice. Obiit 25 Feb. MDCCXXIII., aetat. XCI.</p>
<p>&#8220;이 아래 이 교회와 도시의 건축자인 크리스토퍼 렌이 묻혀 있노니, 구십 평생을 넘게 살았으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공의 선을 위해 살았노라. 독자들이여, 그의 비문을 찾거든, 당신 주위를 둘러보라. 1723년 2월 25일 91세의 나이에 별세&#8221;</p>
<p>사실 이 비문말고 그 거대한 석조 건물은 거대함 이상의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p>
<p>그러나 원래 성당의 화재에서 살아남아 이 성당 벽 한켠에 서 있는 <a href="http://en.wikipedia.org/wiki/John_Donne" target="_blank">존 던(John Donne: 1572-1631)</a>의 조상(effigy)은 그의 시 만큼이나 아름다웠다. (그는 이곳 세인트 폴 성당에서 주임 사제로 짧게 재임한 적이 있었다.)</p>
<p>그는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다. (사실 그의 설교의 한 대목이지만&#8230;)</p>
<p>&#8220;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Each is a piece of the continent&#8230;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8221;</p>
<p>&#8220;그 누구도 섬처럼 떨어진 자가 아니며 그 전체요, 한 사람은 그 대륙의 한 부분일 뿐이니&#8230;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바로 그대를 위해 울리나니.&#8221;</p>
<p>웨스트민스터 성당(Westminster Abbey)에서는 또다른 시인들을 만났다. 성공회 신자였던 <a href="http://en.wikipedia.org/wiki/W._H._Auden" target="_blank">W. H. 오든 (W. H. Auden: 1907-1973)</a>의 기념비문이 마음을 붙들었다. 그가 W.B. 예이츠(Yeats)를 기념하여 쓴 시의 한 구절이 그 자신을 기리는 말로 새겨져 있었다.</p>
<p>&#8220;In the prison of his days / Teach the free man how to praise.&#8221;</p>
<p>이 풍경과 짧은 비문들이 또다른 생각으로 이끌어 간다. 교회 안의 한 성직자로서, 세상에 던져진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나는 어떤 삶을 어떻게 가꾸어 낼 것인가? 어떻게 자유로운 이들에게 노래할 수 있도록 가르칠 것인가?</p>
<p>그러나 이는 한 개인의 성직자도, 세상의 모든 주교들도 만들어 주지는 못할 것이다. 자칫 그것은 그 주어진 권위때문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 삶 속에서 경험하는 하느님을 나누고, 이에 대한 깊은 성찰과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함께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삶을 위해 돕고, 이를 기뻐하고 향유하는 일이 필요하겠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삶의 아름다움을 기뻐하고 함께 향유하는 일도.</p>
<p>며칠 동안 런던에 머물면서 나는 그 향유에 대한 갈망으로 많이도 걸었다.</p>
<p>블로그 독자들이여, 생의 기념비를 찾는다면, 당신과 당신 주위의 삶을 보시라.</p>
]]></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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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새로 올린 글 목록</title>
		<link>http://lambeth.skhcafe.org/2008/08/15/117</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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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5 Aug 2008 17:55:31 +0000</pubDate>
		<dc:creator>fr. joo</dc:creator>
		
		<category><![CDATA[동정]]></category>

		<category><![CDATA[블로깅]]></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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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미처 마치지 못하고 끄적거려 놓은 것들을 정리하는 일이 만만치 않습니다. 돌아와서도 몽롱한 정신때문에 집중할 수가 없었고요. 이제야 정신을 차리면서 포기할 것을 일찍 내려 놓고, 몇가지만 다시 정리해서 올렸습니다.
일정에 따라 소식과 관련 글을 올린 탓에 첫 화면에 잡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최근 새로 올린 글의 목록을 적고 연결합니다.

성공회 전통과 생명의 둥지 - 두 조상(彫像)을 보며
한국 성공회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미처 마치지 못하고 끄적거려 놓은 것들을 정리하는 일이 만만치 않습니다. 돌아와서도 몽롱한 정신때문에 집중할 수가 없었고요. 이제야 정신을 차리면서 포기할 것을 일찍 내려 놓고, 몇가지만 다시 정리해서 올렸습니다.</p>
<p>일정에 따라 소식과 관련 글을 올린 탓에 첫 화면에 잡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최근 새로 올린 글의 목록을 적고 연결합니다.</p>
<ul>
<li><a href="http://lambeth.skhcafe.org/2008/08/15/120">성공회 전통과 생명의 둥지 - 두 조상(彫像)을 보며</a></li>
<li><a href="http://lambeth.skhcafe.org/2008/08/05/107" target="_blank">한국 성공회 여성들에게 - 여성 주교 두 분의 격려사</a></li>
<li><a href="http://lambeth.skhcafe.org/2008/08/05/106" target="_blank">성찰과 반영의 사이: 최종 &#8220;반영&#8221; 보고서</a></li>
<li><a href="http://lambeth.skhcafe.org/2008/08/05/106" target="_blank">증언과 성찬례, 그리고 순교</a></li>
<li><a href="http://lambeth.skhcafe.org/2008/08/04/114" target="_blank">람베스 회의 폐회 미사 - 설교</a></li>
<li><a href="http://lambeth.skhcafe.org/2008/08/03/112" target="_blank">배신, 식민주의, 그리고 캔터베리 대주교</a></li>
<li><a href="http://lambeth.skhcafe.org/2008/07/30/105" target="_blank">교황이 람베스 회의에 어쨌다고?</a></li>
<li><a href="http://lambeth.skhcafe.org/2008/07/27/111" target="_blank">경청과정 - 아프리카 LGBT 다큐멘타리</a></li>
<li><a href="http://lambeth.skhcafe.org/2008/07/22/113" target="_blank">현대 세계의 복음화 - 브라이언 맥라런</a></li>
<li><a href="http://lambeth.skhcafe.org/2008/07/21/110" target="_blank">개회 성찬례 직후 인사말 - 오인숙 사제 수녀</a></li>
<li><a href="http://lambeth.skhcafe.org/2008/07/21/109" target="_blank">개회 성찬례 직후 인사말 - 김근상 주교</a></li>
<li><a href="http://lambeth.skhcafe.org/2008/07/21/108" target="_blank">개회 성찬례 직후 인사말 - 박경조 주교</a></li>
<li><a href="http://lambeth.skhcafe.org/2008/07/21/104" target="_blank">람베스 회의에서 만난 친구들 - 브라이언 카슬 주교</a></li>
</ul>
<p>꼭 올려야지 했지만 그렇지 못한 것들도 있습니다. 특히 최종 의견 [반영] 보고서를 위한 공청회가 두 차례 더 열려서 훨씬 열띤 논쟁이 오고 갔는데, 그 내용을 짧으나마 올릴까 했지만 잘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기회가 다시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p>
<p>그리고 댓글에서 궁금해 하신 것에 응답하고자 톰 라이트 주교와 관련된 글도 계획해 놓았는데, 그분의 인터뷰와 람베스 회의 기간 동안에 행한 강연을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습니다. 또 자칫 이런 글이 어떤 편향으로 오해받을까 주저하는 것도 있고요.</p>
<p>어떤 일이 끝나면, 특히 그것이 논쟁적인 것이라면, 뒷 이야기들이 많은 법입니다. 여기서 드러내지 못하는 숱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만, 이 공간이 적절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삼가하고 이 블로그를 접으려는 참입니다.</p>
]]></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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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성공회 전통과 생명의 둥지 - 두 조상(彫像)을 보며</title>
		<link>http://lambeth.skhcafe.org/2008/08/05/120</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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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5 Aug 2008 22:38:50 +0000</pubDate>
		<dc:creator>fr. joo</dc:creator>
		
		<category><![CDATA[동정]]></category>

		<category><![CDATA[신학]]></category>

		<category><![CDATA[일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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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말보다는 풍경 하나가 더 많고 깊은 것을 전해주는 일이 많다. 회의 기간 동안 캔터베리 대성당에 여러 차례 방문했다. 첫 방문 때부터 내 눈을 사로 잡은 것이 있다. 캔터베리 대성당 외부 벽에 세워져 있는 여러 조상(彫像)들이다.
맨 처음 눈길을 잡는 것은 목이 잘려나간 조상이었다. 바로 순교자인 토마스 베케트 캔터베리 대주교(1118-1170)이다. 사실 왕권(헨리 2세)과 대결하여 순교당했던 탓에 캔터베리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말보다는 풍경 하나가 더 많고 깊은 것을 전해주는 일이 많다. 회의 기간 동안 캔터베리 대성당에 여러 차례 방문했다. 첫 방문 때부터 내 눈을 사로 잡은 것이 있다. 캔터베리 대성당 외부 벽에 세워져 있는 여러 조상(彫像)들이다.</p>
<p><img class="alignleft" style="float:left; margin-right:4px;" src="http://lambeth.skhcafe.org/wp-content/uploads/2008/08/lc-becket.jpg" alt="lc_becket.jpg" width="134" height="324" />맨 처음 눈길을 잡는 것은 목이 잘려나간 조상이었다. 바로 순교자인 토마스 베케트 캔터베리 대주교(1118-1170)이다. 사실 왕권(헨리 2세)과 대결하여 순교당했던 탓에 캔터베리 대성당은 더욱 유명한 순교의 순례지가 되었다. 그래서 그의 입상이 가장 먼저 순례자들을 환대했으리라.</p>
<p>그러나 그는 또다른 수모를 당해야 했다. 헨리 8세는 다시 종교 권력을 세속 왕권에 굴복시키려 했다. 그렇다면 &#8220;대성당의 살인&#8221;(T.S.Elliot)의 주인공인 베케트라는 상징이 그리 곱게 보일리 없었다. 헨리 8세는 다시 베케트의 목을 쳤다. 목이 없는 그의 입상은 이런 권력을 둘러싼 싸움의 한 상징으로 남아 있다.</p>
<p>그 주위에 역사책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의 조상들이 펼쳐져 있다. 엘리자베스 1세도 입구 가장 양지 바른 쪽에 도도하게 서 있다. 그러나 이들은 내 눈을 사로 잡지 못했다.</p>
<p>성당 정문 입구 외곽으로 돌아서면 양지와 그늘이 교대로 돌아서는 자리에 또다른 조상이 서 있다.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그 명상적인 태도때문도 아니요, 그가 들고 있는 책에 대한 궁금증때문도 아니다. 바로 그 왼쪽 어깨 위에 틀어진 새의 둥지 탓이다.</p>
<p>바로 리차드 후커(Richard Hooker: 1544-1600)의 입상이다. 그는 이른바 성공회 신학의 &#8220;방법&#8221;을 정초한 사람이다. 성공회 신학은 확정된 교리적 체제나 교리적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8220;방법&#8221;이요 &#8220;태도&#8221;이다. 그것이 성공회 신학의 전통이 되었다. 사실 그것이 전통을 살아 있게 하고, 그 전통 안에서 새로운 생명들이 둥지를 틀 수 있도록 한다. 리차드 후커의 입상은 그걸 웅변하고 있었다.</p>
<p style="text-align: center;"><img src="http://lambeth.skhcafe.org/wp-content/uploads/2008/08/lc-hooker.jpg" alt="lc_Hooker.jpg" width="480" height="969" /></p>
<p>교회사가 야로슬라브 펠리칸은 [전통의 옹호] <em>The Vin</em><em>dication of Tradition</em> (1986)에 이런 경구를 남긴 바 있다.</p>
<p>&#8220;전통은 죽은 이들의 살아 있는 신앙이요, 전통주의는 살아 있는 이들의 죽은 신앙이다.&#8221; (Tradition is the living faith of the dead, traditionalism is the dead faith of the living.)</p>
<p>성당 방문객들의 관심이 귀퉁이에 있는 이 후커와 그 어깨 위에 튼 새의 둥지에도 닿았을까? 이 풍경은 세계 성공회와 람베스 회의에 어떤 뜻을 건네고 있을까?</p>
<p>독자들 가운데 혹시 캔터베리 대성당을 방문하실 일이 있거든, 성당 클로이스터 바깥 잔디밭에 바르게 누워 있는 윌리암 템플 대주교(와 그의 아버지 프레데릭 템플 대주교)와 그 건너편 그늘 벽에 박혀 있는 마이클 램지 대주교의 기념석도 살펴 보시면서, 리차드 후커 어깨 위에 둥지 튼 새들에게도 문안해 주시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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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한국 성공회 여성들에게 - 여성 주교 두 분의 격려사</title>
		<link>http://lambeth.skhcafe.org/2008/08/05/107</link>
		<comments>http://lambeth.skhcafe.org/2008/08/05/107#comments</comments>
		<pubDate>Tue, 05 Aug 2008 22:27:00 +0000</pubDate>
		<dc:creator>fr. joo</dc:creator>
		
		<category><![CDATA[동정]]></category>

		<category><![CDATA[이슈]]></category>

		<category><![CDATA[인터뷰]]></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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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람베스 회의가 끝난 직후의 시점에서 세계 GFS 회의가 서울에서 진행되고 있다. 익숙치 않을 영문 이니셜을 돌아보거니와, &#8220;소녀들의 친구 모임&#8221;(Girls&#8217; Friendly Society)라고 하면, 그 구성원들의 면모와는 언뜻 아귀가 맞지 않아 보이지만, 모든 여성을 젊고 발랄하고 표현하는 말이라 치거나, 혹은 &#8220;마음만은 소녀&#8221;인 젊은 여성들을 대변하는 모임으로 생각하면 그리 낯설지 않을 법하다. 실은 어려움에 처한 10대 여성들의 삶을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람베스 회의가 끝난 직후의 시점에서 세계 GFS 회의가 서울에서 진행되고 있다. 익숙치 않을 영문 이니셜을 돌아보거니와, &#8220;소녀들의 친구 모임&#8221;(Girls&#8217; Friendly Society)라고 하면, 그 구성원들의 면모와는 언뜻 아귀가 맞지 않아 보이지만, 모든 여성을 젊고 발랄하고 표현하는 말이라 치거나, 혹은 &#8220;마음만은 소녀&#8221;인 젊은 여성들을 대변하는 모임으로 생각하면 그리 낯설지 않을 법하다. 실은 어려움에 처한 10대 여성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모임으로 시작됐다. 세상의 반쪽인 여성들이 다른 찌질한 반쪽인 남성들에게 도전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응원을 보낸다.</p>
<p>그나저나 <a href="http://lambeth.skhcafe.org/2008/08/01/95">여성 독자들에 대한 변명에서 약속</a>한 바가 있거니와, 언급했던 두 분을 짦게 만나서 동영상 인사말을 녹화했다. 여러 좋지 않은 조건때문에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으나, 몇달 전 갓 성품받은 여성 주교 한 분과, 연륜이 녹록치 않은 또 다른 한 분에게 한국 여성들을 위한 격려의 말씀을 부탁했다.</p>
<p>우선 케이 골드워시 주교(the Rt. Rev. Kay Goldworthy). 이 분은 호주 성공회 최초의 여성 주교로, 퍼스 교구의 보좌 주교이다. (꽉찬 일정과 또다른 인터뷰로 이미 목소리가 잠길 정도로 피곤했는데도 흔쾌히 응해 주셨다.)</p>
<p style="text-align: center;"><!-- Smart Youtube --><span class="youtube"><object width="425" height="344"><param name="movie" value="http://www.youtube.com/v/qFuyFYVxb2U&amp;rel=0&amp;color1=402061&amp;color2=9461ca&amp;border=0&amp;fs=1&amp;autoplay=0"></param><param name="allowFullScreen" value="true"></param><embed src="http://www.youtube.com/v/qFuyFYVxb2U&amp;rel=0&amp;color1=402061&amp;color2=9461ca&amp;border=0&amp;fs=1&amp;autoplay=0"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fullscreen="true" width="425" height="344" ></embed>   </object></span></p>
<p>인터뷰 번역: &#8220;제 이름은 케이 골드워시입니다. 호주 서부 해안에 있는 퍼스(Perth) 교구에서 왔습니다. 람베스 회의에 오기 두 주 전에 저는 한 한국 남자분에게 견진을 주었습니다. 그분은 공부하러 왔던 학생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갖게 되었고, 작은 교회의 교인이 되었습니다. 정말 즐거운 일입니다. 또한 한국에 계신 여성 사제들에게 인사를 드립니다. 여성 사제로서 잘 활동해주시기를 바라며, 늘 자신감과 용기를 갖고 여러분의 사목 활동을 지속해 나가길 바랍니다. 하느님의 축복을 빕니다.&#8221;</p>
<p>어렵게 만나 우중에 인터뷰한 빅토리아 매튜 주교 (the Rt. Rev. Victoria Matthew). 이 분은 캐나다 성공회 최초의 여성 주교로, 오랫동안 캐나다에서 일했으며, 최근 유방암과 싸워 이겼고, 최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 처치 교구장으로 초대받아 그리로 옮겨가게 되었다.</p>
<p style="text-align: center;"><!-- Smart Youtube --><span class="youtube"><object width="425" height="344"><param name="movie" value="http://www.youtube.com/v/3lF3p7FWW-M&amp;rel=0&amp;color1=402061&amp;color2=9461ca&amp;border=0&amp;fs=1&amp;autoplay=0"></param><param name="allowFullScreen" value="true"></param><embed src="http://www.youtube.com/v/3lF3p7FWW-M&amp;rel=0&amp;color1=402061&amp;color2=9461ca&amp;border=0&amp;fs=1&amp;autoplay=0"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fullscreen="true" width="425" height="344" ></embed>   </object></span></p>
<p>인터뷰 번역: &#8220;저는 빅토리아 매튜입니다. 저는 (캐나다의 주교로 일하다가)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교구장으로 이전하는 시기에 있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서 한국 성공회의 여성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여성들은 세상에 새로운 문을 열어주는 독특한 책임을 가지고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매개자가 되고,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데 공헌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러한 소명을 신실하게 받아들여서 하느님의 뜻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주시기를 바랍니다.&#8221;</p>
]]></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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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성공회에 대한 언론 보도, 바른가?</title>
		<link>http://lambeth.skhcafe.org/2008/08/05/103</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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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5 Aug 2008 09:03:23 +0000</pubDate>
		<dc:creator>fr. joo</dc:creator>
		
		<category><![CDATA[동정]]></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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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정리해서 올리지 못하는 글들 가운데는 성공회, 그리고 람베스 회의에 대한 언론 보도의 내용과 태도에 대한 글들도 더러 있다. 그 내용을 자세히 올리는게 마땅하나, 지금 처지가 그걸 허락하지 않으니 급한 마음에 드는 짧은 생각을 나누려고 한다. 신문 보도를 보면서 괜히 놀라고 속상해 할 우리 신자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우선 이번 람베스 회의에 대한 언론의 취재는 극히 제한되었다. 교회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정리해서 올리지 못하는 글들 가운데는 성공회, 그리고 람베스 회의에 대한 언론 보도의 내용과 태도에 대한 글들도 더러 있다. 그 내용을 자세히 올리는게 마땅하나, 지금 처지가 그걸 허락하지 않으니 급한 마음에 드는 짧은 생각을 나누려고 한다. 신문 보도를 보면서 괜히 놀라고 속상해 할 우리 신자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p>
<p>우선 이번 람베스 회의에 대한 언론의 취재는 극히 제한되었다. 교회 언론이든 일반 언론 매체든, 예배는 물론, 성서연구, 인다바 그룹, 그리고 공청회나 전체 모임에 전혀 참석할 수 없었다. 이 모임에서는 사진 촬영도 우리 커뮤니케이션 팀만 할 수 있었다. 다만 주교들이 개인적으로 회의장 밖에서 인터뷰하거나, 스스로 블로깅하는 것으로 그 소식이 전해졌다. 람베스 회의 진행팀은 언론과 인터뷰하는 것을 제재하지는 않았지만, 조심스럽게 대처하기를 여러 차례 당부했다.</p>
<p>언론은 대체로 &#8220;화끈한&#8221; 소식을 &#8220;만드려고&#8221; 한다. 그래서 사실을 전하되, 그 논조에서 과장되고 선정적이도록 조정한다. 그러니 언론들이 인터뷰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따로 있고, 이를 알고 언론에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최소한 내가 직접 보고 느끼는 처지에서 보면, 이른바 &#8220;보수파&#8221;라 불리는 이들이나 주교들이 이런 언론들과 끊이없이 &#8220;플레이&#8221;를 하셨다. 그리고 거기에 따라 아침 신문들은 그 내용을 더욱 선정적으로 보도했다.</p>
<p>언론의 또다른 문제점은 사실 확인도 없이, 다른 매체의 기사를 &#8220;잘못&#8221; 베끼고 전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언론에서 더욱 그렇다. 이런 표제어들이 인터넷 검색에서 바로 눈에 띈다. &#8220;교황청, 분열위기 &#8216;성공회 구하기&#8217;&#8221;, &#8220;성공회 &#8216;식민지의 반란&#8217;&#8212; 영국교회 양분 가능성 제기&#8221; 등이다. 이런 것들이 포털에서 그대로 전재되고 블로그들에 &#8220;퍼 날라진다.&#8221; 그런데 실제로 그 내용을 읽어보면 제대로 취재 혹은 문의라도 해서 나온게 없는게 분명해 보인다. 누구에게라도 물어라도 보면서 해야 할 한텐데도 그런 책임감도 보이질 없다. 한심한 것은 우리 교회 게시판들에서도 이렇게 아무렇게나 쓰여진 글들을 퍼다 담은게 보인다는 것이다.</p>
<p>전체의 실상을 담기에 이런 &#8220;선정성&#8221;의 그릇은 너무 작다. 물론 이런 선정성을 이용하는 주교들과 그런 축들의 흐름들이 있기는 하다. 그래서 이들은 회의 기간 내내 외부 언론들과 인터뷰하고, 다른 이들이 고사하는 인터뷰에 얼른 차고 들어가 &#8216;내가 하마&#8217;가 나섰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 눈 앞에 펼쳐진 광경들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p>
<p>당부하거니와, 이런 언론 보도들을 새겨 듣지 마시라. 허튼 보도들인데다, 이들에게는 교회에 대한 애정이 없다. 게다가 우리 성공회에 대한 배려과 깊이를 바랄 일은 언감생심이다. 놀라지 마시라. 세계 성공회는 위기는 그런 보도의 내용이 아니요, 식민지 반란 운운할 일도 벌어지고 있지 않다. 누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p>
<p>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최소한 람베스 회의를 통해서 옆에서 보고, 만나서 듣고, 함께 기도하고 성서를 읽고 공부하고, 먹고, 걷고 이야기를 나눈 처지에서 보면, 세계 성공회는 하나의 공동체로서 사귐(communion)에 대한 믿음을 굳게 가지고 있으며, 하느님의 선교라는 공동의 책임을 가지고 함께 걸어가려 한다는 것이다. 그 책임과 행동이 분열을 넘어서는 길이요, 그렇게 가고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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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성찰과 반영의 사이: 최종 &#8220;반영&#8221; 보고서</title>
		<link>http://lambeth.skhcafe.org/2008/08/05/106</link>
		<comments>http://lambeth.skhcafe.org/2008/08/05/106#comments</comments>
		<pubDate>Tue, 05 Aug 2008 02:05:25 +0000</pubDate>
		<dc:creator>fr. joo</dc:creator>
		
		<category><![CDATA[인다바]]></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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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람베스 회의 보고서는 &#8220;반영&#8221; 보고서인가? &#8220;성찰&#8221; 보고서인가? 이번 람베스 회의는 어떤 결의안이나 성명서를 내지 않기로 한 회의였다는 것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대신 모든 회의 일정에서 함께한 성서 연구와 인다바 토의, 그리고 함께 한 생활과 대화 등을 세계를 위한 하느님의 선교의 견지에서 새롭게 정리한 &#8220;성찰 보고서&#8221;(reflection report)만을 마련하여, 세계 성공회의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그 고민을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람베스 회의 보고서는 &#8220;반영&#8221; 보고서인가? &#8220;성찰&#8221; 보고서인가? 이번 람베스 회의는 어떤 결의안이나 성명서를 내지 않기로 한 회의였다는 것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대신 모든 회의 일정에서 함께한 성서 연구와 인다바 토의, 그리고 함께 한 생활과 대화 등을 세계를 위한 하느님의 선교의 견지에서 새롭게 정리한 &#8220;성찰 보고서&#8221;(reflection report)만을 마련하여, 세계 성공회의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그 고민을 진척시키려고 했다.</p>
<p>최소한 그것이 성공회 전통과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당면한 선교적 과제에 대한 이야기를 발전시킨다고했을 때, 이 보고서는 &#8220;성찰&#8221;의 여지가 강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도 이를 보도할 때 Reflection을 좀더 적극적으로 깊은 의미의 &#8220;성찰&#8221;로 번역해서 소개했다. 이 소개를 읽으신 한국의 임종호 신부님은 &#8220;성찰&#8221;이라는 말에 더 깊은 의미를 물어,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지녀야 할 지적인 태도라는 확신을 더해 주셨다.</p>
<p>그러나 공청회가 지속되는 과정 속에서 이것은 더이상 성찰로 지속되는 어려웠다. 그 성찰의 방법과 내용에 대한 전혀 다른 방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고서 초안에 대한 공청회가 이어지면서, 이 보고서는 공청회에서 들리는 여러 의견을 그대로 &#8220;반영&#8221;하는 보고서가 되었다. 그래서 수동적이고 얕은 문서가 되고 있었다.</p>
<p>어떻게든 분열적인 대립을 피하려는 것이었을까? 또 그 반영이나마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것일까? 성찰이라며 좀더 근원적인 &#8220;도전&#8221;을 담아야 할 것이요, 반영이라면 공평무사하게 다루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 모든 점에서 썩 만족스럽지 못한 보고서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주교 회의에 모든 것을 다 맡기는 것이야 말로 신자들의 직무 유기이리라. 성찰의 깊이로 발전시킬 일은 신자들의 몫이지, 주교들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 &#8220;반영 보고서&#8221;에 일단 만족하기로 한다.</p>
]]></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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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마감에 앞서</title>
		<link>http://lambeth.skhcafe.org/2008/08/04/102</link>
		<comments>http://lambeth.skhcafe.org/2008/08/04/102#comments</comments>
		<pubDate>Mon, 04 Aug 2008 20:26:00 +0000</pubDate>
		<dc:creator>fr. joo</dc:creator>
		
		<category><![CDATA[동정]]></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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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2008년 람베스 회의는 8월 3일 주일 오후 6시에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마침 미사를 드리면서 막을 내렸습니다. 이 블로그의 생명도 재촉할 시점입니다. 다만 아직 마지막 이야기들을 전하지 못했기에 조금 기다리시라는 부탁을 드립니다 (관심을 갖고 있다면.)
저는 어제 밤 늦게 (자정이 넘어서) 짐 로젠탈 신부와 둘이서 런던에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모두 지난 3주 동안 파김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묵는 곳의 인터넷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2008년 람베스 회의는 8월 3일 주일 오후 6시에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마침 미사를 드리면서 막을 내렸습니다. 이 블로그의 생명도 재촉할 시점입니다. 다만 아직 마지막 이야기들을 전하지 못했기에 조금 기다리시라는 부탁을 드립니다 (관심을 갖고 있다면.)</p>
<p>저는 어제 밤 늦게 (자정이 넘어서) 짐 로젠탈 신부와 둘이서 런던에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모두 지난 3주 동안 파김치가 되었습니다.</p>
<p>그런데 지금 묵는 곳의 인터넷 사정이 원할하지 못합니다. 여차저차해서 옥스퍼드에 있는 신부님 댁에 온 바람에 겨우 올립니다. 그래서 인터넷 접속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람베스 회의 마지막 이틀 소식을 정리해서 올리는 일이 늦어질 것 같습니다. 아마 10일 이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p>
<p>이 블로그의 생명이 그래서 조금 길어집니다. 곧 다시 뵙지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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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증언과 성찬례, 그리고 순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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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4 Aug 2008 06:25:36 +0000</pubDate>
		<dc:creator>fr. joo</dc:creator>
		
		<category><![CDATA[동정]]></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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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이슈]]></category>

		<category><![CDATA[일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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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회와 폐회 성찬례는 모두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있었다. 이 두 성찬례에서 나는 똑같은 분들때문에 두번 눈물을 흘렸다.
개회 미사의 복음 순행은 가히 감동적이었다. 멜라네시아 솔로몬 군도의 프란시스칸 수사님들과 수녀님들이 전통 복장과 그들의 전통 음악에 따라 피리를 불고 노래를 하며, 작은 카누에 복음서를 싣고서 신자들 가운데로 복음 순행을 했다. 왜 그 광경에 눈물이 났는지 나는 모른다. 그저 돌로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yle="text-align: center;"><img src="http://lambeth.skhcafe.org/wp-content/uploads/2008/08/lc-melanesians.jpg" alt="lc_Melanesians.jpg" width="480" height="722" /></p>
<p>개회와 폐회 성찬례는 모두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있었다. 이 두 성찬례에서 나는 똑같은 분들때문에 두번 눈물을 흘렸다.</p>
<p>개회 미사의 복음 순행은 가히 감동적이었다. 멜라네시아 솔로몬 군도의 프란시스칸 수사님들과 수녀님들이 전통 복장과 그들의 전통 음악에 따라 피리를 불고 노래를 하며, 작은 카누에 복음서를 싣고서 신자들 가운데로 복음 순행을 했다. 왜 그 광경에 눈물이 났는지 나는 모른다. 그저 돌로 만들어진 추운 성당에서 전통적인 복장이랍시고 거의 발가벗은 채 이 특별 순서를 담당해야 하는 그분들의 처지가 가여워서? 그들이 부르는 피리 소리의 곡조가 즐거운 듯하면서도 어쩐지 애절해서?</p>
<p>그만도 아닐 것이다. 그들의 움직임과 춤은 조심스러웠고, 복음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었고, 그러면서도 기쁨에 환호하듯 했고, 말씀을 지고 살아가야 하는 삶의 기쁨과 무거움을 온 몸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이 내게 밀려 왔다. 그 춤추는 움직임처럼 복음을 우리 삶에서 받들고, 복음 앞에서 그 춤만큼이나 절제된 기쁨을 누리고, 낮아져 섬기는 힘들이 가슴을 벅차게 했을 것이다.</p>
<p>폐회 미사에서는 캔터베리 대주교의 &#8220;증언하는 삶&#8221;에 관한 설교가 마음에 다가왔다. 특히 우리가 증언과 이야기를 성찬례 신비 안에 가지고 와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삶으로 이끌어 갈 것을 촉구하는 그 말씀에는 분명 힘이 있었다. 그러나 이 신비는 증언의 삶을 통해서만 우리를 움직이는 힘을 갖는다.</p>
<p>성찬례를 마감하기 직전, 우리는 2003년 솔로몬 군도 안에서 벌어졌던 인종 간 대립의 화해를 위해 일하다가 순교한 성공회 프란시스칸 수사들의 이름을 교회력에 올리는 순서를 가졌다. 여섯 수사 순교자들이 이름이 불려지고, 그들의 삶을 기억했다. 사실 순교(martyrdom)란 &#8220;증언&#8221;의 원래 말이다. 증언은 온 삶으로 하는 것이다. 캔터베리 대주교의 설교가 이 순교의 증언을 상기시켰더라면 더 큰 힘이요 도전이었을 것이다.</p>
<p>캔터베리 대성당은 이런 순교의 증언으로도 유서가 깊은 곳이다. 토마스 베케트가 왕권과의 대결에서 목숨을 잃었을 때, 이곳은 신앙인들의 순례지가 되었다. 옛 사람들과는 달리 다수의 오늘날 사람들은 더 이상 이곳을 순례지로 생각하지 않는다. 관광지일 뿐이다. 베케트의 목이 떨어진 그 돌판도 역사적 흥미거리일 뿐이다. 그러나 여전히 신앙인은 이 순교의 순례자가 되어야 한다. 2003년 순교한 프란시스칸 수사님들은 그러한 순교자였고, 우리는 그 순교의 증언이 되는 순례자인 것이다.</p>
<p>그래서일 것이다. 이 성찬례의 퇴당 순행의 방향은 전혀 달랐다. 집전자와 전례 봉사자들은 함께 한 프란시스칸 수사님들과 함께 행렬을 지어 제대를 지나 대성당 가장 높은 제대 쪽으로 순행했다. 이들은 다시 솔로몬 군도의 전통 음악에 따른 성가를 부르며, 순교자의 이름을 들고 천상을 향한 순례를 재현했다. 그 순례의 행렬에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 순교자의 삶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삶이 이러한 순교의 증언이 되고, 천상을 향한 순례가 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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