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람베스 통신

News & Musings from the Lambeth Conference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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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성공회 여성들에게 - 여성 주교 두 분의 격려사

August 5th, 2008 · No Comments · 동정, 이슈, 인터뷰

람베스 회의가 끝난 직후의 시점에서 세계 GFS 회의가 서울에서 진행되고 있다. 익숙치 않을 영문 이니셜을 돌아보거니와, “소녀들의 친구 모임”(Girls’ Friendly Society)라고 하면, 그 구성원들의 면모와는 언뜻 아귀가 맞지 않아 보이지만, 모든 여성을 젊고 발랄하고 표현하는 말이라 치거나, 혹은 “마음만은 소녀”인 젊은 여성들을 대변하는 모임으로 생각하면 그리 낯설지 않을 법하다. 실은 어려움에 처한 10대 여성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모임으로 시작됐다. 세상의 반쪽인 여성들이 다른 찌질한 반쪽인 남성들에게 도전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응원을 보낸다.

그나저나 여성 독자들에 대한 변명에서 약속한 바가 있거니와, 언급했던 두 분을 짦게 만나서 동영상 인사말을 녹화했다. 여러 좋지 않은 조건때문에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으나, 몇달 전 갓 성품받은 여성 주교 한 분과, 연륜이 녹록치 않은 또 다른 한 분에게 한국 여성들을 위한 격려의 말씀을 부탁했다.

우선 케이 골드워시 주교(the Rt. Rev. Kay Goldworthy). 이 분은 호주 성공회 최초의 여성 주교로, 퍼스 교구의 보좌 주교이다. (꽉찬 일정과 또다른 인터뷰로 이미 목소리가 잠길 정도로 피곤했는데도 흔쾌히 응해 주셨다.)

인터뷰 번역: “제 이름은 케이 골드워시입니다. 호주 서부 해안에 있는 퍼스(Perth) 교구에서 왔습니다. 람베스 회의에 오기 두 주 전에 저는 한 한국 남자분에게 견진을 주었습니다. 그분은 공부하러 왔던 학생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갖게 되었고, 작은 교회의 교인이 되었습니다. 정말 즐거운 일입니다. 또한 한국에 계신 여성 사제들에게 인사를 드립니다. 여성 사제로서 잘 활동해주시기를 바라며, 늘 자신감과 용기를 갖고 여러분의 사목 활동을 지속해 나가길 바랍니다. 하느님의 축복을 빕니다.”

어렵게 만나 우중에 인터뷰한 빅토리아 매튜 주교 (the Rt. Rev. Victoria Matthew). 이 분은 캐나다 성공회 최초의 여성 주교로, 오랫동안 캐나다에서 일했으며, 최근 유방암과 싸워 이겼고, 최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 처치 교구장으로 초대받아 그리로 옮겨가게 되었다.

인터뷰 번역: “저는 빅토리아 매튜입니다. 저는 (캐나다의 주교로 일하다가)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교구장으로 이전하는 시기에 있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서 한국 성공회의 여성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여성들은 세상에 새로운 문을 열어주는 독특한 책임을 가지고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매개자가 되고,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데 공헌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러한 소명을 신실하게 받아들여서 하느님의 뜻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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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에 대한 언론 보도, 바른가?

August 5th, 2008 · 10 Comments · 동정

정리해서 올리지 못하는 글들 가운데는 성공회, 그리고 람베스 회의에 대한 언론 보도의 내용과 태도에 대한 글들도 더러 있다. 그 내용을 자세히 올리는게 마땅하나, 지금 처지가 그걸 허락하지 않으니 급한 마음에 드는 짧은 생각을 나누려고 한다. 신문 보도를 보면서 괜히 놀라고 속상해 할 우리 신자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우선 이번 람베스 회의에 대한 언론의 취재는 극히 제한되었다. 교회 언론이든 일반 언론 매체든, 예배는 물론, 성서연구, 인다바 그룹, 그리고 공청회나 전체 모임에 전혀 참석할 수 없었다. 이 모임에서는 사진 촬영도 우리 커뮤니케이션 팀만 할 수 있었다. 다만 주교들이 개인적으로 회의장 밖에서 인터뷰하거나, 스스로 블로깅하는 것으로 그 소식이 전해졌다. 람베스 회의 진행팀은 언론과 인터뷰하는 것을 제재하지는 않았지만, 조심스럽게 대처하기를 여러 차례 당부했다.

언론은 대체로 “화끈한” 소식을 “만드려고” 한다. 그래서 사실을 전하되, 그 논조에서 과장되고 선정적이도록 조정한다. 그러니 언론들이 인터뷰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따로 있고, 이를 알고 언론에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최소한 내가 직접 보고 느끼는 처지에서 보면, 이른바 “보수파”라 불리는 이들이나 주교들이 이런 언론들과 끊이없이 “플레이”를 하셨다. 그리고 거기에 따라 아침 신문들은 그 내용을 더욱 선정적으로 보도했다.

언론의 또다른 문제점은 사실 확인도 없이, 다른 매체의 기사를 “잘못” 베끼고 전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언론에서 더욱 그렇다. 이런 표제어들이 인터넷 검색에서 바로 눈에 띈다. “교황청, 분열위기 ‘성공회 구하기’”, “성공회 ‘식민지의 반란’— 영국교회 양분 가능성 제기” 등이다. 이런 것들이 포털에서 그대로 전재되고 블로그들에 “퍼 날라진다.” 그런데 실제로 그 내용을 읽어보면 제대로 취재 혹은 문의라도 해서 나온게 없는게 분명해 보인다. 누구에게라도 물어라도 보면서 해야 할 한텐데도 그런 책임감도 보이질 없다. 한심한 것은 우리 교회 게시판들에서도 이렇게 아무렇게나 쓰여진 글들을 퍼다 담은게 보인다는 것이다.

전체의 실상을 담기에 이런 “선정성”의 그릇은 너무 작다. 물론 이런 선정성을 이용하는 주교들과 그런 축들의 흐름들이 있기는 하다. 그래서 이들은 회의 기간 내내 외부 언론들과 인터뷰하고, 다른 이들이 고사하는 인터뷰에 얼른 차고 들어가 ‘내가 하마’가 나섰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 눈 앞에 펼쳐진 광경들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당부하거니와, 이런 언론 보도들을 새겨 듣지 마시라. 허튼 보도들인데다, 이들에게는 교회에 대한 애정이 없다. 게다가 우리 성공회에 대한 배려과 깊이를 바랄 일은 언감생심이다. 놀라지 마시라. 세계 성공회는 위기는 그런 보도의 내용이 아니요, 식민지 반란 운운할 일도 벌어지고 있지 않다. 누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최소한 람베스 회의를 통해서 옆에서 보고, 만나서 듣고, 함께 기도하고 성서를 읽고 공부하고, 먹고, 걷고 이야기를 나눈 처지에서 보면, 세계 성공회는 하나의 공동체로서 사귐(communion)에 대한 믿음을 굳게 가지고 있으며, 하느님의 선교라는 공동의 책임을 가지고 함께 걸어가려 한다는 것이다. 그 책임과 행동이 분열을 넘어서는 길이요, 그렇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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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과 반영의 사이: 최종 “반영” 보고서

August 5th, 2008 · No Comments · 인다바

람베스 회의 보고서는 “반영” 보고서인가? “성찰” 보고서인가? 이번 람베스 회의는 어떤 결의안이나 성명서를 내지 않기로 한 회의였다는 것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대신 모든 회의 일정에서 함께한 성서 연구와 인다바 토의, 그리고 함께 한 생활과 대화 등을 세계를 위한 하느님의 선교의 견지에서 새롭게 정리한 “성찰 보고서”(reflection report)만을 마련하여, 세계 성공회의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그 고민을 진척시키려고 했다.

최소한 그것이 성공회 전통과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당면한 선교적 과제에 대한 이야기를 발전시킨다고했을 때, 이 보고서는 “성찰”의 여지가 강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도 이를 보도할 때 Reflection을 좀더 적극적으로 깊은 의미의 “성찰”로 번역해서 소개했다. 이 소개를 읽으신 한국의 임종호 신부님은 “성찰”이라는 말에 더 깊은 의미를 물어,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지녀야 할 지적인 태도라는 확신을 더해 주셨다.

그러나 공청회가 지속되는 과정 속에서 이것은 더이상 성찰로 지속되는 어려웠다. 그 성찰의 방법과 내용에 대한 전혀 다른 방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고서 초안에 대한 공청회가 이어지면서, 이 보고서는 공청회에서 들리는 여러 의견을 그대로 “반영”하는 보고서가 되었다. 그래서 수동적이고 얕은 문서가 되고 있었다.

어떻게든 분열적인 대립을 피하려는 것이었을까? 또 그 반영이나마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것일까? 성찰이라며 좀더 근원적인 “도전”을 담아야 할 것이요, 반영이라면 공평무사하게 다루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 모든 점에서 썩 만족스럽지 못한 보고서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주교 회의에 모든 것을 다 맡기는 것이야 말로 신자들의 직무 유기이리라. 성찰의 깊이로 발전시킬 일은 신자들의 몫이지, 주교들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 “반영 보고서”에 일단 만족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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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에 앞서

August 4th, 2008 · No Comments · 동정

2008년 람베스 회의는 8월 3일 주일 오후 6시에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마침 미사를 드리면서 막을 내렸습니다. 이 블로그의 생명도 재촉할 시점입니다. 다만 아직 마지막 이야기들을 전하지 못했기에 조금 기다리시라는 부탁을 드립니다 (관심을 갖고 있다면.)

저는 어제 밤 늦게 (자정이 넘어서) 짐 로젠탈 신부와 둘이서 런던에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모두 지난 3주 동안 파김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묵는 곳의 인터넷 사정이 원할하지 못합니다. 여차저차해서 옥스퍼드에 있는 신부님 댁에 온 바람에 겨우 올립니다. 그래서 인터넷 접속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람베스 회의 마지막 이틀 소식을 정리해서 올리는 일이 늦어질 것 같습니다. 아마 10일 이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 블로그의 생명이 그래서 조금 길어집니다. 곧 다시 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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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과 성찬례, 그리고 순교

August 4th, 2008 · 1 Comment · 동정, 여정, 이슈,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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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회와 폐회 성찬례는 모두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있었다. 이 두 성찬례에서 나는 똑같은 분들때문에 두번 눈물을 흘렸다.

개회 미사의 복음 순행은 가히 감동적이었다. 멜라네시아 솔로몬 군도의 프란시스칸 수사님들과 수녀님들이 전통 복장과 그들의 전통 음악에 따라 피리를 불고 노래를 하며, 작은 카누에 복음서를 싣고서 신자들 가운데로 복음 순행을 했다. 왜 그 광경에 눈물이 났는지 나는 모른다. 그저 돌로 만들어진 추운 성당에서 전통적인 복장이랍시고 거의 발가벗은 채 이 특별 순서를 담당해야 하는 그분들의 처지가 가여워서? 그들이 부르는 피리 소리의 곡조가 즐거운 듯하면서도 어쩐지 애절해서?

그만도 아닐 것이다. 그들의 움직임과 춤은 조심스러웠고, 복음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었고, 그러면서도 기쁨에 환호하듯 했고, 말씀을 지고 살아가야 하는 삶의 기쁨과 무거움을 온 몸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이 내게 밀려 왔다. 그 춤추는 움직임처럼 복음을 우리 삶에서 받들고, 복음 앞에서 그 춤만큼이나 절제된 기쁨을 누리고, 낮아져 섬기는 힘들이 가슴을 벅차게 했을 것이다.

폐회 미사에서는 캔터베리 대주교의 “증언하는 삶”에 관한 설교가 마음에 다가왔다. 특히 우리가 증언과 이야기를 성찬례 신비 안에 가지고 와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삶으로 이끌어 갈 것을 촉구하는 그 말씀에는 분명 힘이 있었다. 그러나 이 신비는 증언의 삶을 통해서만 우리를 움직이는 힘을 갖는다.

성찬례를 마감하기 직전, 우리는 2003년 솔로몬 군도 안에서 벌어졌던 인종 간 대립의 화해를 위해 일하다가 순교한 성공회 프란시스칸 수사들의 이름을 교회력에 올리는 순서를 가졌다. 여섯 수사 순교자들이 이름이 불려지고, 그들의 삶을 기억했다. 사실 순교(martyrdom)란 “증언”의 원래 말이다. 증언은 온 삶으로 하는 것이다. 캔터베리 대주교의 설교가 이 순교의 증언을 상기시켰더라면 더 큰 힘이요 도전이었을 것이다.

캔터베리 대성당은 이런 순교의 증언으로도 유서가 깊은 곳이다. 토마스 베케트가 왕권과의 대결에서 목숨을 잃었을 때, 이곳은 신앙인들의 순례지가 되었다. 옛 사람들과는 달리 다수의 오늘날 사람들은 더 이상 이곳을 순례지로 생각하지 않는다. 관광지일 뿐이다. 베케트의 목이 떨어진 그 돌판도 역사적 흥미거리일 뿐이다. 그러나 여전히 신앙인은 이 순교의 순례자가 되어야 한다. 2003년 순교한 프란시스칸 수사님들은 그러한 순교자였고, 우리는 그 순교의 증언이 되는 순례자인 것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이 성찬례의 퇴당 순행의 방향은 전혀 달랐다. 집전자와 전례 봉사자들은 함께 한 프란시스칸 수사님들과 함께 행렬을 지어 제대를 지나 대성당 가장 높은 제대 쪽으로 순행했다. 이들은 다시 솔로몬 군도의 전통 음악에 따른 성가를 부르며, 순교자의 이름을 들고 천상을 향한 순례를 재현했다. 그 순례의 행렬에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 순교자의 삶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삶이 이러한 순교의 증언이 되고, 천상을 향한 순례가 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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