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람베스 통신

News & Musings from the Lambeth Conference 2008

성공회 람베스 통신 random header image

람베스 회의 폐회 미사 - 설교

August 4th, 2008 · No Comments · 인다바

람베스 회의는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열린 폐회 미사로 마감했다. 회의를 둘러 싸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고들 보도되곤 했다. 사실 회의 안 사정을 보면 평온하지만 힘들었고, 가볍게 누리는 듯했지만 여전히 표현할 수 없는 무거움들이 있었다. 그렇다. 실제로 말이 많았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들의 신앙 경험과 사목 경험을 나누기 위한 “말”들이었다. 아직은 이런 말과 그 이후의 행동들에 희망을 걸어볼 일이다.

캔터베리 대주교는 폐회 설교에서 “우리 신앙인들이 가져야 할 이야기들”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우리가 증언해야 할 이야기 무엇이느냐는 것이 우리 모든 말과 행동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겠다. 세상 안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증언하는 삶, 특히 세상이 빈곤과 질병, 불의를 물리치는 일 속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우리의 증언이 되기를 바라셨다. 그 증언의 이야기는 항상 전례의 삶 속에서 새롭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 회의를 마감하는 처지에 우리는 우리 모두의 생각과 성찰과 기억과 절망과 우리의 희망을 이 전례 안으로 가지고 옵니다. 이 전례의 공간이야 말로 우리의 이야기를 말하여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기에 적합한 곳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 안에서 사시며, 당신을 바치기 전날 밤에 빵을 들어 떼고 나누었던 이야기를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뭔가 변화를 만들어 내고, 우리를 화해시키고, 그러면서 좀더 깊은 의미에서 우리를 당신의 식탁에 초대하시 함께 나누게 하시고, 그분의 마음에 더 가까이 가도록 하는 좀더 깊은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에 더 가까이” 가는 일이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여기 이 성찬례 안에서 우리는 - 우리 서로는 - 어떤 새로운 일이 일어나는 사건을 경험합니다. 다만 빵과 포도주와 우리 자신이 변할 뿐만 아니라, 세상 전체가 변화되는 어떤 사건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여기 우리 안에 종말의 시작이 있고, 모든 창조의 희망이 실현되고, 모든 사람, 모든 현실이 이 쪼개진 빵과 함께 나눈 포도주 안으로 이끌려 오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 시간, 그리고 매번 드리는 성찬례 안에서 드리는 우리의 이야기요 노래입니다. 부활의 삶은 바로 거기에 주어져서 우리를 강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새롭게 합니다. 우리는 확신을 갖고 나아갑니다. 우리가 체험하는 현실은 예수의 진리와 예수의 사랑이라는 쪼개진 빵으로 새로운 깨달음이 일어납니다. 샘물이 터져나와 사막이 꽃을 피웁니다. 성령이 넘쳐 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 No CommentsTags:

인다바 13 - 8월 3일

August 3rd, 2008 · 4 Comments · 인다바

주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준비 - 하느님의 선교 안에서 지도자로서의 주교

이 세션에서는 이번 람베스 회의 기간을 통하여 걸었던 인다바의 여정에서 얻은 씨줄들을 정리하도록 한다. 그리고 이 회의의 중심 주제인 “하느님의 선교 안에서 지도자로서의 주교”를 다시 강조하면서 그 의미를 되새기도록 한다.

→ 4 CommentsTags:

배신, 식민주의, 그리고 캔터베리 대주교

August 3rd, 2008 · 6 Comments · 동정, 신학, 이슈

람베스 회의가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 영국 타임즈 온라인 판에는 이번 람베스 회의를 보이콧하기 위해 애썼던 우간다 관구장 헨리 오롬비(Henri Orombi) 대주교의 기고문이 실렸다. 그는 람베스 회의를 보이콧하려 노력했으나 성사되지 않자, 이에 대응한 성공회 주교 모임(GAFCON)을 예루살렘에서 열었던 주도적인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실제로 GAFCON (글로벌 성공회 미래 포럼) 예루살렘 성명서는 캔터베리 대주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노라고 선언했다.

또한 오롬비 대주교는 람베스 회의 직전 우간다 주교원 회의를 열고, 우간다의 모든 주교의 람베스 회의 불참 결의를 이끌어 내고, 이에 불응할 때 적절한 징계를 조치를 하겠노라고 으름장까지 놓은 바 있다. 이 오롬비 대주교는 계속 진행되는 람베스 회의, 그리고 무엇보다도 캔터베리 대주교에 치명타를 날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참고로 그의 기고문 전문 링크)

이 기고문에서는 특별히 캔터베리 대주교를 표적으로 삼아, 세계 성공회 안에서 캔터베리 대주교직이 식민지의 산물일 뿐이라며, 천주교의 교황 선출에 빗대어 그 위치를 깍아 내렸다. 교황은 주교들인 추기경 가운데서 뽑히는데 비해서, 캔터베리 대주교는 영국이라는 세속 정부에 의해 지명된다는 점을 들어 비판하고, 또 그렇게 지명된 캔터베리 대주교를 세계 성공회 일치의 도구로 보는 것이야 말로 식민주의적 유물이라는 것이다.

이런 언급들은 여러 가지 궁금증을 만들어 낸다. 하나는 이 분들이 말하는 “식민주의”라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것이고, 오롬비 주교를 포함한 가프콘 주교들에게 내재한 실제적인 “식민주의”의 본연은 무엇일까 하는 것, 그리고 이들이 교황 선출 운운하면서 캔터베리 대주교를 공격하는 일 뒤에 담겨 있는 또 다른 두 가지 면들, 즉 세계 성공회에 교황제를 들여 오고 싶어 하는 것과, 성공회 전통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 전통에 대한 그들의 무지에 대한 것이다.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라고 불리는 세계 성공회 내의 보수파들은 자주 식민주의 혹은 제국주의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해 가면서, 특별히 미국과 캐나다 성공회, 그리고 다른 “서양” 성공회의, 이른바 “자유주의적인” 입장을 비판한다. 역사적으로나 지금 당장 정치-경제적 의미의 제국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국가 권력과 겹치는 양상에서 사람들의 피식민지 경험을 자극하여 이들 나라 성공회에 대한 적대감으로까지 확장시키는데 적절하게 성공하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은 최근의 동성애 논쟁과 관련하여 “문화적 제국주의”라는 풍미하는 신조어까지 멋대로 갖다가 붙인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 같은 사람을 알리 없는 일반 사람들은, 널리 알려진 개념에 “이미지”만을 덧씌우는 이런 “수사”(rhetoric)에 넘어가기 일쑤다.

이들이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혼란을 노리는 것은 간단히 말해서 이런 것이다. 미국은 누가 봐도 제국주의다. 그럼 미국 성공회는? ‘제국주의 나라의 종교(문화)이니 당연 그들의 행태는 문화적 제국주의다’는 단순 공식을 대중화한다. 누구를 공격하기 위해서라면 이런 저속한 행동에 저명하다는 신학자들도 그냥 눈을 감고서 스스로도 이런 대중화된 조작적인 수사학을 이용한다. 영국 더럼 교구장인 N.T. 라이트 주교가 그런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그러나 식민주의란 무엇인가? 강의까지 필요하지 않다. 말 그대로 풀어보자면, 우선 “사람과 문화를 강제적으로 이식하는 것”이겠고, 좀더 정치-경제와 관련된 입장에서 보자면, 그 식민지를 대상으로 어떤 권력 혹은 시장 관계를 통해서 그 자원을 착취하는 적극적이며 팽창적인 권력 행사이기도 하다. 또 이를 지탱하기 위해 동원되는 문화 이념도 포함한다.

그렇다면 현재 세계 성공회의 동성애 논쟁과 관련해서 누가 이런 사전적 의미의 식민지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가? 실제로 이들이 연합하고 있는 미국 혹은 영국의 보수파 주교들의 많은 사람들이 자국의 제국주의적 지배 행태에 대한 반성이 별로 없는, 오히려 변화된 오늘의 조건에서 새로운 제국주의를 부추기는 기독교 우파의 생리과 비슷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까?

식민주의의 유산과 관련해서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오롬비 주교는 현행 캔터베리 대주교직을 두고 식민지적 유산이라고 했다(좀더 정확하게 말하고 싶었다면 제국주의적 유산이라고 했어야 하리라).

그러나 식민지적 유산은 스스로를 “글로벌 사우스”라고 부르는 이들에게 가장 깊이 내면화되어 있다. 간단히 말해서 이들이 갖고 있는 성서 해석 방법이나, 교리에 대하 이해야 말로, 이른바 “선교사 시대”라 불리던, 특히 제국주의의 팽창과 병행되었던 그리스도교 선교 운동의 “문명 개화”(civilizing cultures) 이념의 유물에서 한치도 벗어나 있지 않다. 이들의 주장에서는 자기 맥락 안에서 진행한 신학적 고민의 산물이 거의 보이질 않는다.

실제로 이들이 얼마나 식민지 선교 유산에 갇혀 있는지는 최근 가프콘의 예루살렘 성명서를 들여다 보아도 분명히 드러난다. 성공회 전통과 관련된 것 두가지만 지적한다. 우선 선언서는 영국 종교개혁 당시에 마련된 [39개 신앙 조항]을 “교회의 참된 교리”를 담고 있으며, 이것이 오늘날 성공회 신자들에게 권위있는 것이라 치켜 올린다. 그런 다음 1662년 영국 교회의 공동 기도서를 “예배의 기도의 참되고 권위있는 기준”이라고 선언한다.

과연 그럴까? [39개 신앙 조항]은 종교 개혁 당시 논쟁의 산물이다. 그 상황을 통해서 읽지 않으면, 이 “역사적” 문서는 현대 교회 일치 운동에 큰 걸림돌이 될 여지가 많다. 1662년 기도서를 애지중지하는 이들의 태도는 실제로 세계 성공회의 전례 발전에 대한 고민보다는 영국 교회의 영향 아래 있었으면 하는 바람, 혹은 영국 교회가 자신의 기준이라는 생각의 발로이다. 1662년 기도서를 스코틀랜드 성공회 신자들도 모본으로 인정할까? 흥미롭게도 람베스 회의에서 있었던 공청회에서 이와 비슷한 주장이 나오자, 곧장 스코틀랜드 성공회 주교들은 하나 같이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캔터베리 대주교직에 대한 생각이 다양한 것은 사실이다. 나도 신학교 때 어느 교수 신부님께서 볼멘소리로 “왜 캔터베리를 대주교를 영국 놈들만 해야돼?”라고 하시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도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좀더 공부하고 교회 전통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그게 생각 얕은 비판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시 알았다. 문제점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교회 전통은 몇몇 중요한 교구 혹은 주교직을 중심으로 가시적 일치의 상징으로 삼아왔다. 그뿐이다. 오히려 문제는 그 가시적 일치의 상징이 일치의 권력이 되는 순간이다. 로마 교회를 보라. 교황은 로마 교구의 교구장일 뿐이다. 다만 전체 교회(최소한 서방 교회)는 그 주교좌를 일치의 상징적 중심으로 인정했을 뿐이다. 그것이 권력이 되었던 것이 바로 중세 교회의 발전이요, 타락이었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대명사가 되었으니, 이런 선거로 뽑으면 탈식민주의가 되는가? 그래서 우리도 천주교의 교황처럼 성공회 교황을 뽑자는 발상인가? 여기에는 또다른 권력에 대한 향수가 있다. 최소한 지난 몇년 간의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의 캔터베리 대주교 흔들기 이면에는 “성공회 교황 만들기”가 자리잡고 있다. 실제로 이 프로젝트는 직전 캔터베리 대주교이 조오지 캐리 대주교때부터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오롬비 대주교는 이런 계획을 썩 내켜 하지 않는 로완 윌리암스 대주교의 “지난 5년 간”에 대해 낙담을 드러낸다.

어쨌든 이런 교황적 캔터베리 대주교 일차 후보자라면 나이지리아의 아키놀라 대주교이다. 이런 권력 지향이야 말로 제국주의, 세계 성공회를 식민지로 삼으려는 식민주의가 아니겠는가? 이것이야 말로 성공회 전통의 종교개혁 정신과 그 이후에 스스로 성찰하면서 발전시킨 전통에 대한 “배신”이 아니겠는가?

→ 6 CommentsTags:

[성공회 계약]에 관한 기자 회견 (ACNS4502)

August 2nd, 2008 · No Comments · 동정, 성공회 계약, 이슈

[성공회 계약]에 관한 기자 회견이 있었다. 그 내용을 세계 성공회 뉴스 서비스 (ACNS)에서 아래에 옮겨 놓는다.

“세계 성공회가 하느님의 은총과 섭리로 계속 되리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웨스트 인디 관구장이자 계약 작성 모임의 의장인 드렉셀 고메즈 대주교의 말이다. “우리가 찾으려 했던 것은 성공회 전통의 기본적인 원칙들을 새롭게 정의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세계 성공회 회원 교회들이 우리가 누구이고, 우리가 드러내려는 것이 무엇인가(를 확정하여 그것을 중심으로) 모이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다른 의견이 제기되었으며, 이에 따라 고메즈 대주교는 “우리에게는 ‘논의를 했고, 이것이 그 결론이다’라고 말할 법적인 장치나 획일적인 교도적 장치가 없습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어떤 계약이라는 것이 세계 성공회를 좀더 법제적인 모양으로 만들려는 것은 아니며, 계약 작성 모임은 “어떤 법제적인 혹은 법적 계약 절차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고 말했다.

고메즈 대주교에 따르면, 대신 “우리의 계약은 상호 협력이라는 원칙에 기초할 것”이며, “우리는 이를 순례의 과정으로 보며, 모든 성공회 신자들은 지금 이 순례의 길을 걷고 있다, (다만) 우리는 이 순례의 길을 좀더 쉽게할 수 있는 장치를 찾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 참석한 보고자들은 계약 작성 과정이 이러한 단계에 있다는 것에 동의했지만, 만약 어떤 관구가 그 계약 문서에 동의하는 서명을 하지 않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으며, 다만 그 결과는 이 계약 과정이 진행되면서 결정될 것이라고만 언급했다. 그러나 계약 모임은 이러한 계약 작성을 위해 결코 서두르지는 않을 것이며, 각 관구들이 이에 대해서 어떤 응답을 하는지를 듣고 이를 반영하기 위한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계약 작성 모임은 2008년 8월 말에 다시 모여서 람베스 회의에 참석한 주교들의 의견을 검토할 예정이다. 한편 관구들은 2008년 3월 말까지 관구의 의견을 제출해야 하며, 이에 따라 4월까지 3번째 계약 초안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이 3차 초안은 2009년 5월 자메이카에서 열리는 세계성공회협의회(ACC)에 보고될 예정이다. 그래서 모임은 “우리는 계약 작성 모임의 견해보다는, 주교들과 관구들의 의견을 반영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레버 음왐바 (보츠와나) 주교는 계약의 정신은 우정의 정신이기를 희망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해야 한다… 우리는 친구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친구가 되려면 우리 모두 우리 자신의 울타리 - 우리 자신의 안전 지대 - 를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그 밖에 있는 좀더 넓은 세계를 탐험해야 한다. 우리는 종종 우리 밖에 있는 것들, 혹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느끼며, 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나라를 여행하고 그 문화를 경험하게 될 때, 그 사람들이 우리와 똑같은 필요와 소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두려움의 상태에서 사람들을 징계하려는 규칙이나 정책을 지닌 적대적인 계약”을 만드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상호 존경과 존중, 협력의 계약”을 만들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약은 “성공회의 아름다움을 더욱 진작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결국에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우리의 인간 존엄을 진작시키는 어떤 것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의 모든 견해들을 함께 모아서 그것들이 모두 이 일에 공헌하도록 해야 한다.” (ACNS)

→ No CommentsTags:

인다바 12 - 8월 2일

August 2nd, 2008 · No Comments · 인다바

주제: 우리의 나누는 공동의 삶을 키워내기 - 주교, 계약, 그리고 윈저 진행 과정 (the Windsor Process)

이 세션에서는 윈저 계속 그룹(the Windsor Continuation Group)에서 제기한 문제들을 살펴 볼 것이다. 이 그룹에서는 람베스 회의 직전에 모여서 인다바 그룹에서 다뤄야 할 내용들을 정리했다.

→ No CommentsTa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