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람베스 통신

News & Musings from the Lambeth Conference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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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다바 9 - 31일

July 31st, 2008 · No Comments · 인다바

주제: 하느님과 서로에게 귀 기울이기 - 주교와 인간의 성(Human Sexuality)

목적:

동성애 문제를 다루는 것이 하느님의 선교에 우리가 참여하는 것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듣고 이해하도록 한다.

중심 질문:

세계 성공회 안에서 논의되고 있는 동성애에 대한 문제가 하느님의 선교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 (개인의) 교구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이 세션을 위한 자료:

  • [세계 성공회와 인간의 성 - 경청과 대화를 돕기 위한 자료] (세계 성공회가 인간의 성 문제에 관련하여 하느님과 서로에게 귀 기울이도록 돕기 마련된 자료집으로, 최근 SPCK 에서 펴냈다.)
  • 세계 성공회 경청 과정 책임자가 낸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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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베스 회의에 누가 참석했나?

July 30th, 2008 · No Comments · 공청회, 동정, 이슈

람베스 회의에 누가 참석했고, 참석하지 않았나? 이전 회의라면 이게 별로 관심사가 될 이유가 없었다. 개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하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런데 왜 이게 관심사가 되나? 그것은 이번 람베스 회의에 대한 “보이콧”이 있었고, 그게 제대로 되지 않자, 이른바 “GAFCON”이라는 “글로벌 사우스” 중심의 주교들 모임이 람베스 회의 직전 예루살렘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결국 참석한 주교들은 약 650여명이 된다고 한다. 참석하지 않은 주교들은 약 150 여명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더 중요한 이야기들이 있다.

“람베스 회의 성찰들” 보고서 청문회 자유 발언에서 첫번째로 나선 주교는 우선 보고서 초안에 나와 있는 주석이 불명확한 것을 지적했다. 초안 주석 원문에는 38개 관구 교회들 가운데 35개 관구가 참여하고, 나이지리아, 르완다, 우간다가 참석하지 않았다고 명시되었지만, 실제로는 르완다에서 몇몇 주교가 참석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이지리와와 우간다 관구만 한 명의 주교도 오지 않은 셈이 된다. 이 점은 곧장 보고서 작성팀의 사과와 함께 시정되었다.

사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나이지리아 관구에서 한 명의 주교(시릴 오코로차 주교)가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는 피터 아키놀라 나이지리아 대주교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세계 성공회와 대화를 지속하기 위해서 람베스 회의에 참석하겠노라고 공언했다. 실제로 그는 람베스 회의 직전에 영국에 왔다. 그런데 돌연 그는 나이지리아로 돌아갔다. 그가 람베스 회의에 등록을 했는지는 아직 확인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가 돌아간 이유는 분명하다고 언론은 전한다. 오코로차 주교의 아내가 신변의 위협을 느껴서, 주교의 귀국을 종용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피터 아키놀라 대주교는 람베스 회의 전에 주교원 회의를 소집하여, 회의 참석 거부를 공식화했다. 그리고 내부적으로는 이 공식적인 결의를 따르지 않으면 일종의 징계가 있으리라는 것을 시사했다고 한다. 반기를 든 사람은 시릴 주교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도 결국 돌아가야 했다.

우간다도 나이지리아의 상황에 별반 차이가 없다.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케냐의 경우는 이런 종용 사태는 없어서 교구장 주교가 자율적으로 결정해서 참석했다. 케냐의 한 주교에게 직접 물어본 바로는 7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친분을 갖고 있는 마차코스 교구의 조셉 카누쿠 주교는 참석하지 않았다. 6년전 케냐에서 만난 여러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기회였는데, 그분을 다시 보지 못해 아쉬웠다.

탄자니아는 대부분의 주교들이 참석했다. 수단의 경우는 이런 내부적 종용은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관구장과도 생각이 다르게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는 주교도 눈에 띄었다.

영국에서도 가프콘(GAFCON)에 참석하고는, 람베스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주교가 더러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로체스터 교구의 나지르-알리 주교이다. 그러나 그 교구의 지역 주교인 브라이언 카슬 주교(이분은 11년 전 내가 신학생이었을 때 한국을 다녀 간 적이 있어서 친분을 맺었는데, 주교가 된 이후로 다시 처음 만났다)는 참석했다.

호주 시드니 교구의 참석을 바라는 것은 허황된 일이다. 호주 멜버른 대주교에게 직접 확인한 바로는, 시드니 교구의 모든 주교들과, 또 이와 전혀 반대 성향의 매우 보수적인 가톨릭 성향의 교구가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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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베스 회의에 대한 성찰” 보고서 공청회 2 - 자유 발언

July 30th, 2008 · 1 Comment · 공청회, 동정, 이슈

자유 발언에서는 보고서의 다양한 표현들에 대한 지적과 대안이 제시되었다. 그 내용 혹은 인상 깊은 내용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 교회에 대한 이해에서 “사도적 교회”와 “사도적 사목직”에 대한 언급, 그리고 “세례와 성찬례”가 이러한 사목의 근본적인 표현이라는 점이 제시되어야 한다 (제프리 로웰, 영국성공회 유럽 교구)
  • 이 문서의 핵심에는 “하느님의 통치”의 빛에서 본 “선교”라는 근본적이며 폭넓은 비전에 기초해야 하며, 이것이 명시되어야 한다. 이 하느님의 통치라는 전망 안에서 어떤 누구도 제외되어서는 안된다 (테리 브라운, 멜라네시아 말리타 교구)
  • “복음화(전도)는 교회의 생명을 위한 피”라는 말은 문제가 있다. 교회의 생명을 이루는 피는 “복음”이며, 그 생명의 표현이 “복음화”(전도)이다.
  • 사회 정의에 관련된 장에서 그동안 세계 성공회를 통해 펼쳐진 구체적인 사례가 언급될 필요가 있으며, 특별히 “가난한 자를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신학적 관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 “예배에 의해 틀지워진”이라는 항목에서 실제로 예배와 삶에 대한 대한 연결이 없다. 예배는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삶의 지표이며, 이것은 세상 속의 삶을 통해서 드러나야 한다. 그 드러나는 형식을 선교라고 한다. 예배와 선교에 대한 연결점이 분명히 강조되어야 한다. (브라이언 카슬, 영국 성공회)
  • 예배와 선교의 연결이라는 관점에서, 화해의 문제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화해는 하느님께서 세상에 주신 선물이라는 깨달음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화해의 가장 분명한 성사가 바로 성찬례이다. (브라이언 카슬)
  • 에큐메니즘 부분에 나온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사촌”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형제와 자매이다”라고 해야 한다.
  • “주교를 향한 신뢰”라는 표현이 자칫 모든 교회의 구성원들, 특히 다른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을 제외할 위험이 없지 않다.

생각나는 대로 적어본 것들이다. 공청회 중에 메모한 것들이 모두 다 날아간 탓에 상세한 내용을 적지 못해 아쉽다. 좋지 못한 컴퓨터를 탓해야 하나, 아니면, 버그가 많은 소프트웨어(ecto)를 탓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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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베스 회의에 대한 성찰” 보고서 공청회 1 - 내용

July 30th, 2008 · 4 Comments · 공청회, 동정, 이슈

이번 람베스 회의는 “인다바 그룹”이라는 독특한 경험 나누기와 서로에게 귀 기울이기를 통해서 진행되면서, 과거의 회의와는 다른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 이번 회의와 과거 회의들 간의 대표적인 차이는 어떤 결의안(resolution)이나 공식적인 공동 성명서(communiqué) 등을 마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 어떤 결과물을 낼 것인가? 오늘 공청회는 바로 그 결과물을 “2008년 람베스 회의에 대한 성찰들”(Reflections upon the Lambeth Conference 2008)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로 채택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인다바 그룹의 성찰들과 보고들을 묶어서 정리하고, 이를 “성찰들”로 문서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문서의 초안을 보고하고 이에 대한 공청회를 가진 것이다.

이 문서 초안의 차례는 이렇다.

  1. 서언
  2. 성공회의 주교들, 성공회의 정체성
  3. 복음화 (전도)
  4. 사회 정의
  5. 교회 일치 운동(에큐메니즘)
  6. 환경
  7. 종교간 대화

성찰 문서 초안은 여기까지만 나왔고, 이어서 마련될 내용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 인간의 성과 권력(Gender and Power)
  • 성서들 (The Scriptures)
  • 인간의 성과 경청(Human Sexuality and Listening)
  • 계약 (the Covenant)
  • 윈저 보고서가 제안하는 과정 (The Windsor Process)
  • 하느님의 선교 안에서 지도하기 (Leading in God’s Mission)
  • 결론

초안 전반부만 나와서였을까? 특별히 극단적인 논쟁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대체로 초안 전반부 내용을 동의하는 가운데 중요한 표현들 (단어 하나 하나를 어떻게 사용하느냐, 그 의미와 뉘앙스들을 포함한)을 살피고 대안, 혹은 교정을 제안하는 자유 발언이 주를 이루었다.

초안의 문서 전반부 서언에 나타난 특징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이 성찰 보고서 최종적으로 채택된 후에, 우리 말로 번역되어, 어떤 형태로든 출간될 수 있기를 바란다.)

  • 2008년 람베스 회의의 주제: “선교를 위해 주교들을 준비시키고, 성공회 정체성을 강화시키는 일”
  • 캔터베리 대주교의 부탁 - 당면한 갈등과 긴장 속에서도 먼저 좀더 넒은 공동체를 생각하고, 무엇보다 선교라는 맥락 안에서 주교직의 역할과 성공회의 정체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 캔터베리 대주교 - “기존의 관습과 방식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존경과 인내와 이해에 대한 새로운 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 인다바 - 모든 목소리가 들려질 수 있어야 한다.
  • 복음과 인다바 과정과, 주교들과, 세계 성공회 공동체에 대한 신뢰
  • 성공회의 길 - “성서로 빚어진” “예배로 틀지워진” “공동체적 사귐을 위해 질서를 갖춘” “하느님의 선교에 방향을 맞춘” 길

그 다음은 위에 말한 순서의 주제에 따라 다양한 신학적 기초와 경험들에 대한 진술들이 줄을 이었다.

한편 세계 성공회 “일치의 도구들”에 관한 주교들의 생각을 드러내는 구절이 눈길을 끌었다. 특별히 관구장 회의에 대한 불신이다. 초안은 이렇게 말한다:

(이른바)’일치의 도구들’, (일치를 위해서) 관구장 회의가 어떤 역할을 하리라는 확신이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세계 성공회의 일치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을 강화하는 일이 더 낫다는 강한 의견들이 제시되었다.

  • 개인과 개인의 관계들
  • 교구 간의 동반자 관계들
  • 우리가 서로 소속되어 있으며, 서로 간에 사랑으로 묶여 있다는 감각을 되살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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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이 람베스 회의에 어쨌다고?

July 30th, 2008 · No Comments · 인다바

한국 성공회의 어느 교회 게시판에 보니 로마 가톨릭 교황이 세계 성공회의 분열을 염려하여 람베스 회의에 특사를 파견했다는 기사가 있다고 한다. 그 옮겨 놓은 기사만을 통해서 보자면 참으로 로마 가톨릭 교회는 걱정이 늘어지셨다. 게다가 그 걱정은 실상 성공회를 향한 걱정이라기 보다는 집안 단속을 위한 걱정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말 그 기사가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실제로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람베스 회의에 온 손님은 여럿이었다. 실제로는 모두들 공식 초청을 받고 온 것이니, 정황을 알아보지도 않고 외신을 베껴 적고 있는 한국의 어느 신문의 내용과는 사뭇 다르다. 그 인물들은 바티칸 교회 일치 평의회 의장인 발터 카스퍼 추기경, 인류 복음화 성성의 이반 디아스 추기경, 그리고 영국 천주교의 머피-오코너 추기경 등이었다. 카스퍼 추기경은 자유 선택 세션 모임에서 강연을, 디아스 추기경은 전체 모임에서 복음화에 대한 주제로 강연을 했고, 머피-오코너 추기경은 빈곤과 질병 퇴치를 위한 “새천년 발전 계획”(MDGs)을 위한 세계 성공회 주교들의 런던 시가 행진(London Day)에 에큐메니칼 대표자 가운데 하나로 참석했다.

이번 람베스 회의는 에큐메니칼 대표자들이 어느 때보다도 많은 회의였다. 천주교뿐만 아니라, 여러 지역의 다양한 전통의 정교회 주교들이 참석했으며, 루터교를 비롯한 다양한 개신교 지도자들과 유대교 지도자들도 초청받아 참석했다. 그리고 이들은 전체 공청회의 발언이 아닌 한, 모든 일정과 대화 모임에 한 일원으로 참석해서 자신과 자기 교회 전통의 생각을 나누었다. 이들은 단순한 옵서버 이상의 대우를 받으며 회의 기간 진행된 모든 대화에 적극 참석했다. 특히 정교회 주교들이 모든 일정에 함께 참여하여 대화하는 모습은 눈에 띌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천주교 주교들의 참여는 돋보이지도 않았으며, 특별히 회의의 일상 일정 안에서 대화에 참석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또하 발터 카스퍼 추기경과 이반 디아스 추기경의 강연은 람베스 회의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의 눈을 동그랗게 만들곤 했다.

카스퍼 추기경은 세계 성공회가 첨예하게 씨름하고 있는 두 가지 문제, 즉 동성애와 여성 성직 문제에 대한 성공회의 태도를 즉각 비난하고 나섰다. “동성애는 무질서한 (착란적) 행동으로 비난받아야 할 일”이라고 못박고, 현재 세계 성공회 28개 관구에서 행하고 있는 “여성 성직 서품”에 대해서 명백한 반대 입장과 동시에 이것이 양 교회 간의 일치에 걸림돌이 된다고 분명히 말했다. 카스퍼 추기경의 주장과 언조에 대해서 대부분 성공회 주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바티칸의 공식 입장”에서 한치도 더 나아간게 없는 말들 속에서, 그리고 이것이 새로운 대화를 열기 위한 시작이 아니라, 대화의 걸림돌이라고 규정하는 처지에서 왜 이런 입장을 여기서 다시 들어야 하느냐는 회의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물론 이 분을 우군으로 삼아 고마워하고 머리를 조아란 주교들도 꽤나 여럿 있었다.

“복음화와 사회 정의”를 주제로 전체 모임 강연으로 초대받았던 디아스 추기경은 여러 차례 사람들을 아연실색케 했다. 특별히 현대 사회의 흐름을 “포스트모더니즘”으로 규정한 가운데, 이러한 흐름들이 기존 교회의 가르침에 도전이 되고, 세계를 병들게 한다고 진단하려들 때만해도 모두들 참고 듣는 듯 했다. 그러나 그가 현대 사회의 영적 위기를 진단한답시고 “영적인 파킨슨병, 영적인 알츠하이머병”이라고 비유했을 때, 대회장 전체에서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나 역시 옆자리에 앉았던 영국의 한 주교 부인과 무안한 마음에 서로를 바라보며 혀를 차야 했다. 다음날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영국의 파킨스병 및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위한 모임들에서 항의 성명이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인류 복음화 성성 장관이라는 분이 그 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서 이처럼 감각이 떨어져서야 “복음화”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듣고 본 처지에서 든 개인적인 느낌이긴 하나, 이들이 한국 어느 신문에 난 기사대로 “분열을 막으러 온 특사”였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의 공식적인 입장만 되뇌이며 분열을 공고히 할 뿐이었다. 람베스 자료집에서 읽는 [공동의 선교를 통한 일치]에서 고민하고 진전시키던 열정, 즉 세계의 생명과 세상의 정의를 위한 공동의 대응을 위한 열정에 대한 어떤 작은 식견도 느낄 수가 없었다. 이분들을 캔터베리 대주교가 나서서 초청했다면, 두고 두고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을 일이 분명해 보였다. 하기야 천주교의 “공식적 입”에서 무엇을 더 바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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